내일시론

다극화 세계흐름 외면한 '뺄셈외교'

2023-12-06 11:35:46 게재
민족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한 현 국제정치 질서는 구조적으로 국가 간 갈등이 상존한다. 각국이 자신의 국익만 극단적으로 관철하려다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려는 것이 외교의 본령이다.

윤석열정부가 내건 외교 핵심은 '글로벌 중추국가'로의 도약이다. 한미일 군사·경제협력 강화를 통해 북한을 압도하고 국가안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가까운 동맹국과 연대해 힘을 배가시키겠다는 것은 당연한 시도다. 하지만 대전제가 있다.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판단에 따라 자국 중심으로 국익을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일본과의 군사협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이들이 제시하는 프레임에 따라가게 된다. 윤석열정부는 '가치외교'를 내세우며 한 진영의 최전선에 스스로 자리매김했다. 이념대결의 선봉, 행동대장으로서 선명성을 분명히 하겠다고 나섰다. 북한과의 대결 고취는 물론 미국이 적대적 경쟁국으로 규정해 포위에 나선 중국이나 전쟁 중인 러시아를 자극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만해협' 발언이나 우크라이나 방문 등이 그것이다.

미국만 바라보며 내달린 이념적 편향외교와 '119 대 29'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반대진영의 강한 반발을 부른다는데 있다. 체제위협을 느낀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강력한 연대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1990년 수교 이래 수십년 북한보다 우리를 가까이했던 러시아가 북러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며 '적대'로 돌아섰다. 중국도 한국이 미국의 대중포위전략의 선봉에 선 것에 불만이 가득하다.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역대 보수·진보정권이 공들여 '관리'해온 노력들이 허망하게 날아갔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정부 외교라인이 생각하듯, 미국이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던 '과거의 미국'이 아니란 점이다. 국제사회는 본격적인 다극체제로 급발진 중이다. 특히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개발도상국들이 미국 눈치를 보지 않고 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중추국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 남미, 아프리카 등 과거 '제3세계'로 불리던 개도국들이 미중 대결구도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으며 뭉치고 있다. 나라수나 인구수로 볼 때 압도적 다수다.

윤 대통령이 가장 공들여온 외교행사인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가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도 이런 세계흐름과 무관치 않다. 사우디의 119표에 비해 고작 29표 획득에 그친 것은 미국만 바라보며 내달린 '이념적 편향외교'가 얼마나 단세포적이고 무모한 전략이었는지를 잘 드러낸다. 대통령실이나 외교부 국가정보원의 정보분석이 엉터리였는지, 예측을 했으면서도 대통령에게 사실을 '직보'할 환경이 안됐었던 것인지 가려내야 한다.

대통령실 국정원 외교부의 정보분석에 큰 구멍이 나 있음은 지난달 APEC 정상회의 때 한중 정상회담이 불발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한국의 정상회담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정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회담성사에 기대를 걸었는데 정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담당 간부나 통역을 대동하지도 않았음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이제껏 한국을 '독립변수'로 여기던 중국이 미국 일본과만 얘기하면 되지 한국은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종속변수'로 여기게 됐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미일에 '올인'한 편향외교의 현주소다.

잦은 해외순방으로 긴축예산 기조 속 역대 최고 정상외교 비용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해외나들이가 잦다. 그러다보니 순방비용이 느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정상외교 예산으로 책정된 249억원을 진작 다 쓰고 예비비에서 329억원을 끌어다 썼다고 한다. 국가미래가 달린 과학기술 R&D 예산까지 대폭 삭감하면서 대통령 자신은 흥청망청 쓴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19 대 29'는 이런 비판에 기름을 부었다.

국제 흐름을 도외시하며 북한을 압박하는 막무가내 마이웨이는 한반도 위기를 증폭시킨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달 정상회담을 갖고 대결국면에서도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군사분야 고위급 대화채널을 복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남북간 우발적 무력충돌과 확전을 막을 최후의 안전판인 '9.19남북군사합의'의 효력정지를 선언했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