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재수생시대

의대 증원 검토에 재수생 더 늘어난다

2023-12-06 11:04:14 게재

역대 최대 N수생 배출, 재수 권하는 사회 … "성공 학생 30% 내외"

수능 성적표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재수를 생각하는 고3 학생들이 일부 있다. 한번 더 도전해서 좋은 결과를 얻겠다는 각오는 기특하지만 재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조심스럽게 든다. 재수 생활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올해 수능에서 재수생 수는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렇게까지 재수생이 늘어난 바탕에는 대입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대입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대입에 쏟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재수생이 늘어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살펴본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4학년 수능 원서 접수 결과에 따르면 전체 수능 응시생 중 졸업생이 35.3%를 기록, 28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4학년 수능 전체 응시생은 50만4588명으로 이 중 졸업생은 15만9742명이었다. 2023학년 수능에서 졸업생 비중은 31.1%였는데 전년 대비 12.3%가 증가한 것이다.

◆학령인구 줄어도 재도전 졸업생 늘어 = 지난 6월 모의평가와 9월 모의평가에서도 졸업생 비율이 늘어났다. 졸업생 비율은 6월 모의평가의 경우 2023학년 16.1%에서 2024학년 19.0%, 9월 모의평가도 같은 기간 18.9%에서 21.9%로 늘었다.

매년 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는데 수능 전체 응시자수는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재학생 수가 줄었으니 졸업생 비율이 늘어나 보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024학년 수능에서 졸업생 응시자 수는 전년에 비해 2만명 가까이나 늘었다.

2024학년 수능은 2022학년 통합형 수능 시행 이후 수학 선택 과목에서 '미적분' 선택자가 '확률과 통계'보다 처음으로 많아졌다. '기하'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53.3%에 달한다. 통상 '확률과 통계'는 인문계열 수험생들이 '미적분'과 '기하'는 자연계열 수험생들이 주로 선택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통합형 수능의 대입 결과를 본 당시 고1 학생들이 자연계열로 많이 진학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9월 모의평가 탐구 영역에서 재학생과 졸업생의 비율을 살펴보면 재학생 사회탐구(사탐) 선택자는 52.9%, 졸업생 과탐 선택자는 60.8%였다. 매년 늘어나고 있는 졸업생 수능 응시자 중 자연계열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서울대는 2024학년 자연계열 모집 단위 지원 시 과학탐구(과탐)Ⅱ 필수 응시를 폐지했다. 따라서 과탐Ⅱ 지원자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 수능에서 과탐Ⅱ 선택자는 전년보다 4900명 정도 늘었다. 6월 모의평가에서 과탐Ⅱ의 표준점수가 높게 나온 것을 보고 선택자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표준점수는 독보적으로 잘하는 학생들이 조금 있을 때 높게 나온다. 상위권보다 하위권이 더 많이 늘어난다면 만점자나 1등급의 표준점수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재수생, 왜 늘었나? = 의대 정원 확대를 앞두고 2025학년에는 졸업생의 수능 응시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전국 40개 의대·의전원이 요청한 증원 규모는 최대 2847명이었다. 얼마나 증원될지 확정되진 않았지만 18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 3058명보다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내년이면 의대의 문이 더 넓어지니 올해 재수를 해보겠다는 움직임이 보인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에서 희망 직업 2위는 초·중·고 모두 의사였다. 의대 목표 재수생 학부모 김도연씨(53세)는 "대입 한번으로 몇십년 걱정을 줄이는 일이니 수험생도 부모도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초·중·고등학교에서 쓴 사교육비에 재수 비용까지 고려하면 청년 창업이 가능했을 만한 금액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심재준 서울 휘문고 교사는 "의대에 붙어도 소위 빅파이브(Big Five)라고 하는 서울 지역 대형 병원을 보유한 의대를 가기 위해 반수나 재수를 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중학교 교사로 있는 지인들 중에서 의대 입시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흔해져 의대 열풍이 고등학교 입학 전으로 내려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귀띔했다. 허준일 대구 경신고 교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의대 열풍이 훨씬 더 강해졌음을 피부로 느낀다"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일수록 의대를 가겠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방침도 재수생을 늘리고 있다. 6월 모의평가 무렵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오면서 뒤늦게 재수 대열에 뛰어든 대학생들이 꽤 있었다. 종로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6월 모의평가를 보지 않고 수능을 응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반수생은 지난해 8만1000여명에서 올해 8만9000여명으로 늘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수능 점수도 한몫 한다. 수능 점수에 만족하는 학생은 100명 중 한두 명에 불과할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수능을 망쳤다고 생각하며 수능 당일 채점을 마치고 재수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심 교사는 "수능은 매년 새로운 문항이 출제되고 심화 학습이 필요한 어려운 시험이라서 고3이 되면 등급이 떨어지지만 학생들은 잘했던 시절의 점수를 기억하고 수능 점수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 입시평가소장은 "학생들은 모의고사 성적만큼 수능 점수를 기대하기 마련이니 혼란을 느끼고 재도전을 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차지원으로 일단 진학 후 반수로 떠나는 학생들도 있다. 2022학년 통합형 수능 시행 이후 자연계열 학생이 인문계열 학과로 지원하는 교차지원이 활발해졌다. 진학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전체에서 과탐 응시자가 인문계열 모집 단위에 지원한 비율은 2022학년 25.88%, 2023학년 27.04%였다.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의 벽이 없어졌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적성에 안 맞는 학과에 합격해놓고 반수하겠다는 경우도 많다.

2023년 8월 31일 발표한 대학 알리미 공시 자료에 따르면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세 대학의 중도포기자(입학한 후 등록하거나 복학하지 않고 학교를 떠난 학생)는 2131명으로 최근 5년 새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대학에서 학적을 포기하는 것은 반수를 위한 통로로 인식된다.

서울대의 중도포기자는 의대 진학을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중도포기자가 많은 학과는 생명과학부 25명, 응용생물화학부 24명, 전기·정보공학부 22명 등으로 모두 이공계다. 서울대는 2021년 이후 중도탈락률이 높아져 올해 1.94%를 기록했으며 내년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 2%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SKY 인문계의 중도포기자는 688명으로 지난해 456명보다 절반 가까이 늘어났다. 대학별로 2022년→2023년을 비교하면 연세대는 187명→338명으로 두배 넘게 늘었으며 서울대는 67명→83명, 고려대는 202명→267명으로 늘었다. 학과별로는 고려대 경영학과 49명, 연세대 인문 계열 48명, 연세대 상경 계열 42명 등이다.

◆재수하면 성적이 오를까 = 재수생의 공부량은 재학생의 공부량보다 많다. 수능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은 과목은 공부하지 않으며 취약한 과목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다. 교내 활동이 아예 없으니 자신의 공부 습관에 맞춰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재수로 성공했다는 학생들은 열명 중 세명에 불과하다. 장문성 종로학력개발원 원장은 "고3 때 수능 성적보다 총점이 올랐다거나 좀 더 좋은 대학을 간 경우가 30% 내외"라며 "습관을 바꾼 30%의 학생들이 성공하는 것"라고 말했다. 시대인재학원 재수종합반을 담당하고 있는 정선주 실장은 "오래 공부한다고 결과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수능 성적표를 받고 수시와 정시 발표에 따라 한번 더 도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기가 곧 찾아온다. 이 입시평가소장은 "제대로 공부해서 자기 성적을 찾을 학생이 재수에 도전해야 한다"며 "자신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기수 기자 · 손희승 내일교육 리포터 sonti1970@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