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명 동의 '국민청원'에 대답없는 국회 … 법안 반영은 '0건'

2023-12-12 11:05:48 게재

97건 중 처리율 11% … 본회의 불부의 10건, 철회 1건

국회의원이 낸 법안 처리비율은 27%, 청원의 배 넘어

7개 상임위, 청원소위 안 열어 … 외통위 2회가 '최다'

국회입법조사처 "심사기간 단축, 청원 활성화에 기여"

국민 5만 명이 동의하면 국회가 답을 하는 '국민동의청원'이 국회의 무관심으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 100건 가까이 국민동의청원이 들어왔지만 처리비율이 10%대에 머물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낸 법안 처리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기획재정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 첫 회의 |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에서 박대출 소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기재위 청원소위는 21대 국회 들어 이날 처음 열렸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1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상임위에 올라온 국민동의청원은 97건이다. 이중 11.3%인 11건만 처리됐다.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한 게 10건이었고 1건은 철회됐다. 법률에 반영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법사위가 21건으로 가장 많이 들어왔지만 1건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14건이 들어온 보건복지위와 행정안전위는 각각 2건, 1건을 처리했다. 12건이 올라온 교육위는 2건을 심사해 결론을 냈고 8건이 올라온 정무위에서는 1건을 본회의 불부의하기로 한 게 전부였다. 국방위(4건) 산업위(4건 상정) 문체위(3건) 농해수위(1건) 국토교통위(3건) 여성가족위(1건) 운영위(1건) 등은 1건도 처리하지 않았다.

반면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처리했다. 21대 들어 2만3121건을 발의했고 이중 27.3%인 6335건을 처리했다. 법률에 반영된 것은 25.8%인 5958건이었다.

국회는 20대 국회 임기종료 직전인 2020년 1월 10일부터 국민동의청원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1년 12월 9일에는 국민동의청원 성립 요건을 30일 이내 '10만 명 이상 동의'에서 '5만 명 이상 동의'로 완화하며 활성화에 나서기도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청원 활성화 시스템'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는 국민동의청원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국회법에 따라 청원 회부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되 60일 범위에서 한 차례만 국회의장에게 심사기간 연장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특별한 사유를 명시하지 않은 단서조항이 악용됐다. "'장기간 심사를 요하는 청원'은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의결로써 심사기간의 추가 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은 '국회의원 임기만료일'까지 심사기간을 연장하는 데에 면죄부를 줬다.

청원소위가 거의 열리지 않았다. 21대 국회들어 청원소위를 한 번 이상 연 곳이 16개 상임위(정보위 제외) 중 9개였다. 7개 상임위는 아예 청원소위를 열지 않았다는 얘기다. 외통위가 2번 열었고 기재위, 교육위, 국방위, 문화위, 산업위, 보건복지위, 환노위, 국토위 등이 1번씩 여는 데 그쳤다. 청원소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법안소위로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청원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이면서 공동체 의제에 관한 다수의 의사를 결집하는 플랫폼"이라며 "특히 국민동의청원은 법률 제·개정 성과를 기대할 수 있어 국민의 입법과정 참여를 보장하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사기간 단축 또는 추가연장 제한은 청원 심사·처리의 적시성을 높여 국민동의청원제도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1회 이상 심사한 청원에 한정해 90일의 범위에서 심사기간의 추가연장을 한 차례만 허용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청원자의 진술권과 관련해서는 "국민동의청원을 위원회에 처음 상정할 때 청원자가 출석해 청원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할 수 있게 하고, 공청회를 실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다만 국민동의청원에 관한 공청회 실시는 일정 수 이상의 동의를 받은 경우로 한정하거나 다른 의안의 경우와 비교해 '원칙적 실시·예외적 생략'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21대 국회 임기를 5개월여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원 임기 만료와 무관한 청원 심사 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민동의청원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제출했다는 점에서 임기 제한을 받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가 발의·제출한 의안과는 다르게 볼 수도 있다"며 "국회법에서도 의안과 청원을 구분해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동의청원에 한해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하더라도 차기 국회에서 이를 계속 심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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