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락의 기후행동
기후대응기금, 대수술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처럼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처리되지 못했다. 연례적인 지각처리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산안에 포함된 수많은 지출 사업들이 적정한지 검토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안에 대한 검토는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나 예산정책처가 담당하나 짧은 기간 내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진행되고 실제 검토 결과가 최종 예산안에 모두 반영되는 것도 아니다.
기후대응기금도 마찬가지다. 기후대응기금은 2021년에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 제69조에 따라 신설된 기금인데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기반 조성, 다양한 사회 주체들의 감축 활동 및 일자리 전환 등에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기후대응기금의 운용 규모가 적정한지, 지출 사업들은 목적에 맞게 제대로 구성되어 있는지 검토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내년 예산안을 기준으로 기후대응기금의 전체 지출 규모는 약 2조4000억원이다. 이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전체 지출 규모 657조원의 0.35%에 불과하다. 정부가 올해 초 발표한 탄소중립 기본계획에 따른 향후 5년간 총 90조원의 재정 투자 계획에도 한참 모자라는 규모다. 탄소중립 기본계획에 따른 우리나라의 감축 목표가 국제 사회의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기후대응기금의 규모는 '조족지혈'일 뿐이다.
선진국은 피해 시민 삶의 질 보호에 집중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도 기후대응기금의 실제 수입은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현재 기후대응기금의 주요 재원 중의 하나가 바로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에게 감축의무를 부과하는 배출권거래제에서 나오는데, 현재 정부의 과잉할당으로 인해 배출권 거래가격이 톤당 1만원 이하 수준이어서 경매수입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기후대응기금에 포함된 대다수의 지출사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기금의 본래 목적과 용도에 맞지 않고 신규 사업이 아니라는 점도 큰 문제다. 2022년 기금 설립 당시 예산안을 살펴보면 전체 지출의 약 60%가 기존에 개별 부처들이 진행하고 있었던 사업들이 단순 이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기후대응기금의 40% 정도만 새롭게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투자되었다는 것인데 이마저도 취약계층 지원이나 정의로운 전환보다는 대부분 자체 투자 여력이 높은 산업계 지원에 사용되었다.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산업계를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전년도 4100억원 대비 무려 40%가 늘어난 5700억원으로 배정되었으며, 녹색금융을 통해 지원하는 예산은 전년도 4400억원 대비 10%가 증가했다. 산업계에는 과도한 지원이 집중되는 반면, 산업 전환에 따른 노동자 지원이나 산림 보호, 건물과 가정 부문에 대한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사회복지시설에 태양광 설치를 지원하는 사업의 예산이 전년 대비 100% 삭감된 것이 좋은 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기후대응기금이 기금의 규모나 운영 측면에서 낙제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의 경우 2023년 예산안 기준으로 약 50조원 규모의 기후전환기금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기후대응기금의 약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독일정부는 전체 기금의 51%를 건물 부문의 에너지 효율 개선과 가정 부문의 재생에너지 요금 지원에 투입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경우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연간 8조1000억원의 세수를 확보하고 이중 5조4000억원을 기후대응기금으로 사용한다. 상당한 예산이 가정 부문의 전기차 보조금과 재생에너지 설치 지원, 대중교통 확산에 사용되며, 전체 예산의 최소 35% 이상은 반드시 취약계층에 지원해야 한다는 자체 기준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밖에도 많은 국가에서 기후대응기금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공통점은 에너지와 산업 전환에서 피해를 입는 시민들의 삶의 질 보호를 위해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금운용 원칙과 우선순위 부재도 문제
무엇보다 우리나라 기후대응기금은 기금운용에 있어 기본원칙과 우선순위가 부재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2조4000억원 남짓 되는 기후대응기금은 공무원들의 '예산나눠먹기'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것이 현실이다. 기후대응기금에 대해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