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위기의 보수, 비상구는 있나
총선을 4개월여 앞둔 여권 분위기는 초상집처럼 어수선하다. 서울 49곳 중 우세지역이 6곳 뿐이라는 당 내부 보고서, 친윤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선언과 버티던 김기현 당대표의 중도하차, 윤핵관 및 친윤 초선 용퇴론 등 하루가 멀다하고 우울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총선 패배감이 여권을 무겁게 짓누르는 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보수언론의 비판도 거칠어졌다. "정권을 향한 경고음이 박근혜 손절 때보다 더 강력한 것 같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지난 6일 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들러리로 세운 이른바 '떡볶기 먹방' 직후 보수신문들은 일제히 사설로 비판했다. 검찰 출신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에 대해서도 "왜 선배 검사여야 하는지 설명이라도 하라"고 직격했다. 특히 한 메이저 신문은 "(명품백을 선물로 받은 김건희 여사는) 하루 빨리 국민 앞에 사과하고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택 사가로 거처를 옮겨 근신하라"는 칼럼을 인터넷 홈페이지 상단에 배치하기까지 했다.
'김건희특검법' 수용해 위기 돌파하자는 주장 급부상
보수진영 전체가 이처럼 총선 위기감을 표출하지만 아직까지 이거다 싶은 뾰족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위기의 진앙지가 바로 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우선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 백약을 무효로 만들고 있다. 여권은 메가서울 구상으로 인접 유권자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나름 미래권력인 한동훈 카드로 반전을 노리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고개를 젓는다. 대통령 지지율이 40% 정도여도 버거울 판인데 지금처럼 30%대 초반에 고정되어서는 이슈와 인물 모두 정권심판론이 집어삼켜버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요즘 윤 대통령 모습을 보면 스스로가 보수의 보호막을 걷어내려고 용을 쓰는 것 같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을 부산엑스포 유치에 총동원한 데 이어 '떡볶기 먹방' 들러리로 세운 것은 경제계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글로벌기업 총수들이 국내정치용으로 불려다니는 전근대적인 풍경에 보수언론들이 발끈한 것도 재계 물밑 민심이 심상치 않기 때문일 게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나름의 돌파책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나라 보수는 더 이상 '김건희 리스크'를 안고 갈 수 없다"라는 모 신문 칼럼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김 여사 손절을 전제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논의가 그것이다. 조만간 야권이 발의할 '김건희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게 아니라 '내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 제기되는 그랜드플랜, 즉 민주당 비명·탈당세력과 이준석까지 포함한 빅텐트 신당으로 총선을 치르자는 구상도 '김건희특검법 수용'이 전제라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런 카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야당 공세에 밀릴 수 없다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에다, 특검법을 수용한다고 해도 총선과 겹칠 특검 기간 내내 '김건희 이슈'가 도배질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불가 입장인 김 여사를 설득하기 쉽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거부권 행사는 확정에 가깝다.
물론 전혀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예전같지 않아 보여서다. 인요한 혁신위의 결단 요구가 윤 대통령 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김 대표와 윤핵관들은 침묵으로 뭉개버렸다. 결국 용산 의지대로 '김장연대'의 동반퇴진이 이뤄졌지만 이들의 저항은 여권 내부에 "더 이상 대통령이 무섭지 않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 됐다. 그런 만큼 궤멸적 위기라는 판단이 서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보수진영 내부의 목소리가 더 거세질 것이고, 결국 윤 대통령이 결단하는 모양새를 갖춰 물러서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대통령 결단, 보수진영 선택 어떻게 될지가 관전 포인트
어쨌건 내년 총선의 기본성격이 '윤석열 대통령의, 윤 대통령에 의한, 윤 대통령을 위한 선거'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지금 보수의 위기를 만든 것도 윤 대통령이지만, 그것을 풀어갈 열쇠도 윤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결론이 없다는 것은 국민의힘도 보수진영도 이미 알고 있다.
과연 윤 대통령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위기가 가중되는데도 윤 대통령이 결단하지 못한다면 보수진영의 다음 수는 또 무엇일까. '윤석열발 위기'가 초래한 보수진영 내 힘겨루기는 4개월 남은 총선의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