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사모님·회장님의 '사법 리스크'
대한민국 정치와 경제의 주요 지도자들이 '사법 리스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외 환경 속에 이를 선두에서 헤쳐가야 할 사람들이 제 발에 걸려 동력을 잃고 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민심이 심상찮다. 김 여사와 그 가족에 대한 정치권 공방은 이미 대선 때부터 시작돼 새삼스러울 건 없다. 하지만 '영부인'이 된 이후의 행보, 특히 최근 명품백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일약 '정치 지도자'가 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몰카 공작"이라고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함정취재'를 비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덥석 미끼를 문 영부인과 이를 방치한 보좌진들의 책임이 상쇄되지는 않는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려다가 낭패만 봐
검찰 역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용산' 관련 사안만 나오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해오고 있다. 대통령이 바뀐 지 2년도 안돼 영부인이 특검 대상으로 거론되는 게 야권의 정치공세만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별검사제'가 도입된 건 1999년 김대중정부 때다. 계기는 김태정 법무부장관 부인'옷로비'사건과 진형구 고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이다. 두개의 사건이지만 사실상 김태정 장관이 직전 검찰총장 시절 있었던 의혹에 대한 것이다. 옷로비는 실체없는 해프닝이었지만 사안 자체를 뭉개려는 권력 핵심부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김대중정부에 대한 불신이 증폭됐다. 높았던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높으신 분들 가족과 친인척 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다. 부풀려지기도 하고 묻히기도 한다. 늘 그렇듯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다 사안이 더 커졌다. 더구나 대통령 부인에 대한 의혹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쌓여가는 마당에 이를 외면해선 곤란하다. 검찰은 더 이상 시간끌기를 하지 말고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야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재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마당에 검찰수사의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보수 지지층과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도 "대통령실 특별감찰관 임명이든 특검 수사든 해야 한다"며 "국민 눈에 가혹하다 싶을 만큼 철저하게 의혹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누구보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해 온 윤석열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야당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부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 돈봉투 사건으로 대변되는 소속 의원들의 불법행위 등은 수사와 재판을 통해 명백히 가려져야 한다. 설사 재판의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치수사다. 억울하다"는 변명만으로는 '하늘'이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서민들이 권력자 재벌 걱정해서야
재계 총수들도 연달아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내년 1월 26일 선고 예정이지만 항소와 대법원 판결까지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두차례에 걸쳐 총 565일간 옥고를 치르는 등 이미 햇수로 8년째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집안 분쟁'에 휩싸였다. 오너가의 분쟁은 개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 신뢰도로 연결된다. 뉴욕타임즈까지 나서 한국 재계의 '가부장적 승계'라며 비판적 시각에서 다뤘다.
전통적인 재벌과 무관할 것 같은 카카오 역시 김범수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효성그룹과 한국타이어도 '형제간 분쟁'으로 법정공방 중이고 태광산업도 오너와 전 경영진과의 알력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KT 등 재계는 이런 저런 이유로 수시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치국 평천하'보다 '수신 제가'가 더 힘들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세간에는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이 잘나가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재벌가 걱정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는 자조섞인 얘기가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사회 지도층의 실수와 무능으로 인한 피해가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걱정이 태산이다. '높으신 분'들이 권력과 부에 매몰되지 않고 국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길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