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빅뱅의 순간을 볼 수 있을까

2023-12-26 11:40:24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얘기는 상식이 된지 오래다.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지식이라 이제는 아무도 우주의 팽창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밤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우리는 팽창하는 우주를 느낄 수 없다. 어릴 적 보았던 북두칠성의 모습은 늘 그대로고 북극성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한 사람은 에드윈 허블이라 알려져 있다. 그가 1929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일수록 우리로부터 더 빨리 멀어져 간다. 그렇다고 모든 은하들이 다 우리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최초, 허블이 측정한 팽창속도는 오늘날의 측정값보다는 많이 컸다. 여러 논란은 있지만 가장 최신의 측정 결과에 따르면 100만파섹 떨어진 은하는 대략 초속 70km로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이 값을 우리는 허블상수라 부른다. 그런데 이 수치만 가지고서는 우주가 빠르게 팽창하는 건지 아니면 느리게 팽창하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기 쉽지 않다.

초속 70km는 대략 1초에 서울에서 춘천까지 날아가는 속력이다. 마하 200이 넘는 속력이니 인간이 만든 로켓이나 비행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이 정도는 빛의 속도에 비교하면 매우 느린 값이다. 사실 허블상수가 와닿지 않는 것은 100만파섹이란 거리 때문이다. 1파섹은 빛으로 대략 3년 3개월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리다. 100만 파섹이면 자그마치 빛으로 330만년을 달려야 한다.

팽창하는 우주, 수축하는 우주

허블상수의 뜻이 결국 330만 광년 떨어진 곳이 매초 70km씩 늘어난다는 것이니, 어찌 보면 매우 작은 변화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매초 0.9나노미터 정도 늘어나는 정도다. 물론 우주가 팽창한다고 실제로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매초 0.9나노미터씩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은 만유인력으로 서로 붙잡혀 있어 공간의 팽창을 따지는 것이 무용하다.

어쨌든 공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허블상수가 정한 만큼 팽창한다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공간이 그만큼 수축한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모든 공간 사이의 거리가 0이 되는 시간을 계산해낼 수 있다. 이 것은 사실 매우 쉬운 계산이다. 330만 광년이 매초 70km씩 줄어들므로 이를 역산해보면 140억년 정도가 나온다. 우리가 늘상 말하는 우주의 나이 138억년과 잘 맞는 값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우주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 보자. 우선 빛나던 별들은 어느 순간 핵융합을 멈추고 빛을 내지 않는 수소가스 덩어리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핵융합을 멈춘다는 것은 핵융합이 끝난다는 것이 아니고 핵융합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우주에 빛나는 별들이 하나도 없고 가스 덩어리로 채워져 있던 시절은 대략 빅뱅 후 2~3억년까지로 추산된다.

시간이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우주는 더욱 작아지고 자그마치 4000도 켈빈이나 되는 뜨거운 가스로 사방이 채워진 불덩어리 모습이 된다. 이때는 빅뱅이 생긴 후 대략 38만년쯤 지났을 때라 여겨진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전파를 통해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최초 모습이다. 이때 뜨거운 가스 덩어리에서 나온 빛들은 지금도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고 이 빛을 우리는 우주의 배경복사라 부른다.

그럼 인간의 발달된 기술로 38만년 이전의 우주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까? 38만년 이전에는 우주가 너무 뜨거워 원자들이 모두 쪼개져 핵과 전자로 따로 돌아다니는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그리고 더 과거로 돌아가 빅뱅 후 1초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는 양성자와 중성자 뿐 아니라 전자와 중성미자 같은 기본입자로 가득찬 곳이 된다.

중성미자로 베이비우주 관측 가능할 듯

여기서 과학자들은 엄청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바로 빅뱅 후 1초쯤에 만들어진 중성미자가 지금도 우리 우주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이 중성미자를 특별히 우리는 '우주 배경 중성미자'라 부른다. 만약 빅뱅 때 만들어진 이 중성미자를 검출해 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낸다면 그야말로 빅뱅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빅뱅의 화석과도 같은 이 중성미자를 검출해내기 위해 새로운 경쟁을 시작했다. 삼중수소를 사용하는 프톨레미 실험이 그중 하나다. 빅뱅 후 1초가 지난 베이비 우주의 모습을 볼 날이 곧 다가올 것 같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