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지방시대와 지역별 전기요금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조항을 넣은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지난 5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균형발전이 명분이다. 역대 보수정권이 '분권과 균형발전'에 인색하고 '집중과 효율'을 중시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의 입법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법안 핵심은 중앙집중형 전력체계를 지역으로 분산하는 내용이다. 발전소 유무와 송·배전비용 등에 따라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다르게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정부 시절부터 탈원전·탄소중립을 위해 추진해왔으니 특별법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정작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조항을 특별법에 포함시킨 것이 국민의힘이다. 여야간 이견이 없는 셈이다. 내년 6월 특별법 시행 시기가 다가오면서 전력자립률이 높은 비수도권 지자체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별법 제정됐지만 당장 시행은 쉽지 않을 듯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 배경은 지역별로 불균형한 전력자립률에 있다. 그동안 전력자립률이 높은 지자체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서 주로 소비하면서 요금은 똑같이 내고 있다는 불만이 많았다. 현재 단일요금제인 전기요금이 차등제로 바뀌게 되면 발전소가 가깝고 인구가 적은 지역은 전기요금이 낮아진다. 반면에 송·배전망이 상대적으로 길고 인구가 많은 수도권은 전기요금이 올라가게 된다.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곳도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자체들이다. 예를 들어 울산시의 경우 환경오염이나 안전사고 위험이 많은 대형 원전이 있다. 그런 위험을 안고 있는 만큼 저렴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를 기준으로 지역별 전력자립률은 서울은 8.6%로 가장 낮고 경기도는 59.8%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발전시설이 많은 충남 221.3%, 부산 218.5%, 인천 212.4%, 경북 202.9%, 전남 178.8%, 강원 119.0% 등이다. 인천을 제외하면 모두 비수도권인데 전력자급률이 훨씬 높다.
그런데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서 주로 소비하면서 요금은 똑같이 내고 있다. 이런 구조적 모순을 바로 잡자는 것이 차등요금제의 취지다. 이는 균형발전에도 부합한다. 전기료가 싼 비수도권 지자체의 입장에선 기업유치에 유리하고 지역중소기업 육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 지자체와 전력소비량이 많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존 단일요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전기라는 재화의 공익성 및 사회적 수용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공기업인 한전의 운영상황도 걸림돌이다. 한전은 2022년 말 기준으로 적자만 22조원이고 부채는 287조원에 달해 추가로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할 입장이다. 여기에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까지 실시한다면 혼란이 가중된다고 정부는 판단한다.
이처럼 지자체의 입장이 엇갈리고 기업들의 반대가 심하자 특별법 제45조는 '송·배전 비용 등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어정쩡한 임의규정이 됐다. 임의규정이라 강제성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방향성과 취지는 동의하지만 실제 시행을 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시행령에 이와 관한 내용은 담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산자부의 움직임을 보면 당장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가 실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으로 차등제 도입이 한걸음 나아간 것은 분명하다.
중앙과 지방 상생발전 위해서라도 차등요금제 진전을
윤석열정부의 '지방시대' 선언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도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빈손으로 끝나게 된 상황이다. 지방분권 과제는 중앙부처의 반발로 무산됐고,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등 균형발전 과제들은 총선에 밀려 기약할 수 없는 처지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만이 균형발전 정책의 유일한 성과다. 역대 정부 가운데 집권 3년차에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정부는 없다. 만약 이 법안마저도 선언적 의미에 그친다면 사실상 윤석열정부의 '지방시대'는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내년 6월 특별법 시행 이전까지 송전요금 차등방안, 지역별 차등 수준 등 논의해야 할 과제가 많다. 지자체들은 특별법의 균형발전 취지를 고려해서라도 '산업용'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당장 전면적 실시는 어렵지만 중앙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차등제에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