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거꾸로 가는 도서관정책
윤석열정부의 거꾸로 가는 도서관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도서관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현재 도서관 정책이 상식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서관 정책을 총괄하도록 법에 규정된 국가도서관위원회는 2년 가까이 구성조차 안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도서관법에는 국가 도서관 정책의 주요 사항을 수립·심의·조정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도서관위원회를 두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도서관위원회는 2020년 4월 출범한 7기를 끝으로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 2022년 4월 위원장과 위원들의 2년 임기가 끝났지만 정부가 새 위원장과 위원들을 위촉하지 않았다.
국가 대표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 관장도 공석이다. 2022년 8월 학계 출신 전임 관장이 퇴임한 후 1년 5개월째 비어 있다. 정부가 3차례에 걸쳐 모집공고를 냈지만 모두 '적격자가 없다'며 뽑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부 하나를 축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직제를 줄이는 대신 소속 기관인 해외문화홍보원의 해외홍보 관련 직제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일부 지자체도 거꾸로 가는 도서관 정책으로 문화예술계의 반발을 산 바 있다. 마포구는 도서관 예산을 삭감하고 공립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밝혀 거센 비판을 받았다.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은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말했다. 근대 이전까지 도서관은 왕을 비롯한 특권층이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근대 산업화와 민주주의의 성장과 함께 공공도서관이 등장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시민으로 역량을 키우는 장으로 공공도서관이 역할을 했다. 1850년 공공도서관법(Public Libraries Act, PLA)이 제정돼 공공도서관 설립 범위, 세금 투입을 통한 공공도서관 설치·운영, 자료의 무료 이용과 공개원칙 등을 확립했다. 이는 공공도서관의 이념이 되었고 유럽 다른 국가의 모델로 자리잡았다.
영국과 미국의 도서관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성장했다. 미국 건국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건국 초기부터 이민자로 구성된 국민에게 민주주의의 이념과 정치체제를 이해시키기 위한 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들은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받은 시민이 전제돼야 하므로 학교 교육과 연계한 지역사회 참여를 중요시했다.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이러한 배경에서 학교 교육과 함께 대표적인 시민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1854년 개관한 보스턴 공공도서관은 현대적 공공도서관의 이념을 실현했다.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대통령과 연방정부, 미국도서관협회가 서로 협력하면서 발전을 이끌었고 대통령 교체나 정치적 성격과 무관하게 모든 정부에서 지속가능한 정책을 추진했다. 예를 들면 박물관도서관서비스법(Museum and Library Services Act)은 2010년과 2018년에 걸쳐 개정되었는데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개정안에 서명했고,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프로그램과 기능을 재승인하고 정보사회에서 박물관과 도서관, 정보전문가의 발굴을 강조하고 정보서비스의 제공과 지원 등의 내용을 추가했다.
이처럼 공공도서관은 민주주의의 산물이며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공기관으로 성장·발전해왔다. 현대사회에서는 단순한 도서 대출을 넘어 지역주민을 위한 복합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퇴행적인 인식과 빈곤한 철학 극복해야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공공도서관은 1236개다. 국가별 공공도서관 1관당 인구수는 4만1617명으로 미국 3만5687명(2021년), 일본 3만8322명, 호주 1만5210명(2021~2022년), 독일 1만2335명 등에 비해 많다. 공공도서관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양적 측면뿐만 아니다. 공공도서관은 정보화와 평생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공공도서관은 정보사회에서 디지털 문해력을 해결하기 위해 정보 접근과 활용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또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문화, 예술 관련 자료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진보 보수의 시각으로 도서관을 재단할 일이 아니다. 도서관에 대한 퇴행적인 인식과 빈곤한 철학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