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증권세제 조금 바꾼다고 도움되나

2024-01-08 12:01:39 게재
정부가 지난달 22일 대주주의 양도세 기준을 완화하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전격 입법예고했다. 대주주 기준 가운데 종목당 보유 금액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올린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기준은 올 1월 1일 양도분부터 적용된다. 시행령만 고치면 되니 참으로 편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발 더 나갔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내년에 도입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 기타 25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 투자자로부터 해당 소득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걷어들이는 세금이다. 금투세는 애초 2023년부터 시행 예정이었지만 개인투자자 등의 반발로 2025년으로 2년간 유예됐다. 그런데 이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이다.

경제여건 개선이 오히려 증시발전에 도움

세금제도란 국가재정을 위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판단과 합의에 의거해 세워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폭넓은 토론과 의견수렴을 통해 중지를 모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없애겠다고 하니 우선 말문이 막힌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의 경우 정부는 변경가능성을 거듭 부인해왔다. 그러다가 대통령통령실 최상목 경제수석비서관이 경제부총리로 기용되면서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기준완화의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 것은 연말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완화시킨다는 것이다. 세금 회피를 위해 대주주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해서 주가가 폭락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개인들의 주식매도는 멈추지 않았다. 양도세 과세 기준일인 지난달 26일에도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을 합쳐 1조14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지난해 과세기준일(1조5370억원 순매도)과 비교해도 큰 차이는 없었다. 지난달 한달 동안 7조원 넘는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한국 증시가 비교적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반도체가격 회복 등 증시주변 여건이 호전된 덕분이다. 요컨대 증시의 상승과 발전을 위해서는 무리한 세제변경보다는 기본적인 경제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선결과제임이 재확인된 것이다.

정책변경 수혜자도 극히 제한돼 있다. 예컨대 금투세를 없애서 세금면제 혜택을 받는 투자자는 6만여명으로 전체 개인투자자의 0.9%에 불과하다. 이렇게 소수에 불과하니 부자감세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극히 초보적인 상식에 비춰볼 때 금융투자자들의 소득은 공권력이 투자자의 권익을 지켜주고 국가가 인프라를 깔아주고 끊임없이 개선해준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소득이 발생했을 경우 최소한의 세금이라도 내야 마땅하다. 다만 그 시기와 세율은 증시와 경제여건을 고려해서 결정하면 된다.

또 증권거래세는 어찌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금투세 시행 시기가 2년 유예되면서 증권거래세는 지난해 0.23%에서 0.20%로 낮아졌다. 올해는 0.18%로 더 내려간다. 증시활성화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금투세 폐지나 대주주 양도세 완화로 인한 세수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거꾸로 거래세를 올릴 지도 모르겠다.

금투세 폐지 정책 총선용 아닌지 의구심

갑작스런 증권세제 개편의 진심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생긴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겨냥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금투세 폐지 계획은 투자자에게 솔깃하게 들린다. 당장 총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야당과의 협의를 거쳐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집권여당 뜻대로 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만약 법개정이 안돼 뜻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을 것이다. 야당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되는 것이다. 지난해 한때 시끄럽게 했던 김포시 서울편입론과 이런 점에서 닮은꼴이다.

윤 대통령은 금투세 폐지방침을 밝히면서 "자본시장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증권세제를 어느날 갑자기 바꾸겠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훼손하고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가중시킬 수도 있다. 게다가 국내증시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효과도 내지 못한 채 세수만 축낼 가능성도 크다. 요즘처럼 세금징수 전망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자제돼야 한다. 굳이 하려거든 세금이 잘 걷힐 때에나 추진할 일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