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돌아간 남북

2024-01-10 11:34:02 게재
갑진년 새해 벽두부터 남북은 포 사격을 주고받는 등 '9.19남북군사합의'가 파기된 상황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북한은 5일부터 사흘 연속 서북 도서에서 포 사격을 가했고 우리 군은 첫날 두배로 대응사격을 했다. 합참은 8일 "(공중에 이어) 지상과 동·서해 해상에 '적대행위 중지구역'(완충구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 선언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빌미로 공중 비행금지구역 효력정지를 선언한데 대해 북한이 '군사합의 전면 무효화'를 밝혀 사실상 사문화된 9.19군사합의 파기 이후 전개될 상황과 함께 남북간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이 부쩍 높아졌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김정은 "대한민국은 주적" … '남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적대 공식화

이러한 흐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론'에서 대남노선의 근본적 방향전환을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강조한 것으로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다. 그는 또 8~9일 군수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우리의 주적"이라며 "(전쟁할 상황이 온다면) 수중의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버릴 것"이라고 위협 강도를 높였다.

남북관계를 더 이상 '민족분단에 따른 특수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교전국가'로 간주하겠다는 것은 유사시 핵무기 사용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설마 같은 민족에게 핵무기를 쏘겠느냐"는 기존 관측을 뛰어넘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며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한미 핵위협에 '강대강'으로 맞서겠다는 뜻이다. 통일전선부 조평통 등 대남기구들도 외무성 산하로 자리매김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2일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신년메쎄지' 담화를 발표하며 "윤석열 정권이 우리에게 보다 압도적인 핵전력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당위성과 정당성을 또다시 부여해 주었다"고 비아냥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서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하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원천봉쇄할 것"이라며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 한미는 연말부터 새해 초까지 보란 듯이 강력한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의 노골적인 핵위협과 관련해 미 국가정보국(DNI)이 지난해 6월 공개한 국가정보협의회(NIC)의 북한 핵무기 관련 국가정보평가(NIE)는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북한: 2030년까지 핵무기 활용 시나리오'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미 정보기구들의 평가를 종합한 것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큰 정보그림을 보여준다.

NIC는 보고서에서 북한이 '강압(coercive)목적' '공격(offensive)목적' '방어(defensive)목적' 으로 핵무기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세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공격목적'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위협을 함으로써 남한을 지배하겠다는 의도다. '강압목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위협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핵전력이 아닌 재래식 전력의 사용을 전제로 한다. '방어목적'은 핵무기를 방어 또는 순전히 억제력으로만 사용하는 시나리오다.

미 정보기구들의 북한 핵 정책방향 종합분석한 'NIE 보고서'

보고서 결론은 북한이 김정은 체제가 위협에 처하기까지는 핵무기를 '공격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그렇다고 북한이 명운을 걸고 많은 재원을 투자한 핵무기를 순전히 방어목적으로만 갖고 있을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지금처럼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 정치·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강압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분석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강압목적'으로 활용한다면 미국에는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우리는 계속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상태로 지내게 된다. 핵무기의 양과 질이 확대될수록 강압의 강도는 더 높아질 것이고, 한미가 전략자산 전개를 늘릴수록 한반도 안보환경은 더욱 불안해지는 '안보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중요한 변수는 9.19군사합의가 파기된 상황에서 남북간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이 부쩍 높아졌다는 점이다. 전면전으로까지 확전되지는 않더라도 국지전 가능성은 늘 상존한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극히 민감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