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선배의 독서 이야기 | 생명과학
2024-01-11 08:31:58 게재
연계 전공 | 생명과학
이미지확대 안희영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1학년
<대학생 선배의 독서 이야기>
“머리가 아닌 가슴을 움직이는 힘,
책 읽기의 최대 매력”
이미지확대 안희영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1학년
Q. 생명과학 분야 전공을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가 희귀 질병으로 발병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어요.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건 치료제가 있었지만 쓸 수 없었다는 거였죠. 약이 단 한 종류였는데, 적용 범위가 한정돼 있어 고령에 당뇨까지 있던 할아버지는 치료 대상이 될 수 없었거든요. 그때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넘어 특정 질병에 대한 ‘제약 없는 약’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어요. 그 덕분인지 고교 시기 가장 좋아하고 깊이 파고든 과목이 <생명과학>이었어요. <생명과학Ⅰ·Ⅱ>를 수강하고 외부 수업인 <고급생명과학>까지 찾아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수업 중 배운 ‘면역 체계 이상 반응’이 흥미로웠어요. 대학에 진학하면 면역학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요. 뜻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더니 운명처럼 고2 때 생명과학 분야에서 명망 높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를 알게 됐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죠.Q. 고교에서 독서 활동을 어떻게 했나요?
과학은 이성적이어야 하지만 과학자는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공계 지망생임에도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도서를 신중하게 골라 탐독한 이유죠. 고교 시절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나만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학생부에 자신만의 역량을 드러내는 데 책만 한 도구는 없다고 보거든요. 제 경우 동물을 좋아해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동물들이 신약 개발 실험에 희생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더라고요. 때문에 관련 내용을 <과학과제연구>의 소논문 주제로 정했는데 당시 읽었던 <문밖의 동물들>이 큰 도움이 됐어요. 제목만 보면 단순히 ‘유기견을 다룬 책’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이 책이 다루는 동물들은 말 그대로 문밖의 동물들이었어요. 집에 있는 반려동물도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내 문밖’에 있는 타자란 거죠. 읽기 전엔 깨닫지 못했던,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던 동물권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계기를 심어줬죠. 덕분에 평가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답니다.<추천 도서>
이미지확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지은이 올리버 색스 펴낸곳 알마 신경장애라는 전문 분야를 대중이 읽기 쉽게 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신경과 전문의였던 지은이가 경증 환자부터 중증 정신질환자까지 관찰하며 그들이 겪는 각 증상과 혼란, 성장 이야기들을 묶어낸 책이에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사람부터 몸의 일부가 없다고 느끼거나 없는 신체의 일부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 젊은 시절 기억만 남아 있는 사람, 반복적인 신체 행동을 하는 투렛 증후군을 가진 사람, 특정 영역에 천재성을 띠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 사전이나 달력을 통으로 외우지만 다른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달하죠. 책을 읽고 ‘정신질환 환자가 겪는 망각은 그 사람에겐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소 충격을 받았어요. 그럼에도 환자 하나하나를 ‘질병을 가진 치료 대상’이 아닌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 대하는 지은이의 시각에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했습니다. ----------------------------- 이미지확대톡톡톡 지은이 공지희 펴낸곳 창비 우리 사회가 소위 ‘음지의 영역’으로 치부해 드러내지 않는, 청소년의 임신과 낙태를 주제로 한 판타지 소설입니다. 저를 울게 한 최초의 책이기도 하고요. 어른들이 모르는 척, 안 본 척하고 싶을 뿐 실상 우리 모두의 청소년기는 결코 어리지 않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이 책은 이를 양지로 꺼내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고 그로 인한 상처도 점점 더 깊어질 거라는 메시지를 주죠. ‘잘난 언니’와 비교당하며 가슴 아파하는 중3 소녀 ‘달림’은 어느 날 놀이터에서 ‘톡톡톡’하며 인사하곤 엄마를 찾아달라는 한 아이를 만나게 돼요. 그리고 그 꼬마를 ‘보푸라기’라고 부르며 동생 마냥 챙겨주죠. 결론을 말하자면 보푸라기는 사실 달림의 조카예요. 언니가 낙태한. 책은 무참하게 소외당하는 존재인 ‘보풀들’을 통해 말로만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현 사회에 따끔한 질책을 가해요. 청소년 도서지만 그 의미만큼은 여느 철학서 못지않은,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김한나 기자 ybbnn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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