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정시 경쟁률분석
주요 대학 정시 경쟁률 급등, 원인은
어려운 수능, 소신·상향지원 이끌어 … 정시 합격선 "변화 크지 않을 것"
통상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면 상위권 대학의 수시 이월 인원이 늘고, 정시에서는 소신·안정 지원 경향이 나타난다. 즉, 상위권 정시 경쟁률이 하락한다. 하지만 최근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역대급 '불수능' 이후 진행된 2024학년 정시 원서 접수 결과 서울대 연세대는 최근 5년 사이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 외 서울 주요 대학도 경쟁률이 상승했다. 수시 이월 인원이 대거 발생한 교대와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한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에도 지원자가 몰렸다. 의대는 수시와 반대로 지역 대학의 경쟁률이 서울권 대학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정시에서 경쟁률 변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경쟁률은 실제 합격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24학년 정시 경쟁률에서 눈여겨볼 지점을 짚어봤다.
2024학년 정시 원서 접수가 지난 1월 6일 마감됐다. 서울 주요 대학의 경쟁률은 전반적으로 상승했으며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의 상승 폭이 컸다. 특히 서울대와 연세대는 2020학년 이래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번 수능은 응시자 중 졸업생 비율이 사상 최대였던 데다 국어 수학 영어 모두 어렵게 출제돼 수험생들이 정시에서 보수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실제 결과는 전망과 달랐다.
경쟁률 상승 폭이 가장 큰 대학은 성균관대이다. 총 1653명 모집에 9306명이 지원, 5.63: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상위권 학생이 선호하는 서울대도 4.71:1로 전년(3.18:1) 대비 크게 올랐다. 연세대와 고려대도 경쟁률이 상승했다.
교대와 과학기술원에도 지원자가 몰렸다. 전국 10개 교대와 3개 초등교육과의 경쟁률은 전년(1.98:1)보다 크게 오른 3.31:1을 기록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지스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디지스트), 울산과학기술원(UNIST 유니스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 등 4개 과학기술원은 총 65명 선발에 6743명이 몰려 평균 103: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이 몰리는 의대는 지역별 경쟁률이 눈에 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학년 정시에서 전국 39개 의대 중 서울권 9개 대학은 3.63:1, 지방권 27개 대학은 7.73: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반대학과 달리 지방권 의대에 지원이 많았다.
◆'불수능' 후 경쟁률 상승, 원인은? =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면 수험생들은 정시에서 안정·하향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특히 정시에서는 '불수능'일 때 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주요 대학의 경쟁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통합형 수능 도입 이후 2022~2024학년 서울 주요 14개 대학의 정시 경쟁률을 보면 상대적으로 평이한 난도의 수능으로 평가받는 2023학년이 가장 낮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불수능이 오히려 소신·상향지원을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이번 수능은 정부의 '초고난도(킬러) 문항 배제' 방침 이후 졸업생들이 대거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2024학년 수능 응시자 현황을 보면 전년 대비 재학생은 2만3593명 감소한 반면 졸업생은 2만151명 늘어났다. 졸업생 비율이 전체의 35.26%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이 중 상당수가 상위권으로 목표 대학이 한정적이라 선호도 높은 주요 대학에 지원이 몰렸을 것으로 분석한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은 "반수생들은 재적 학교보다 합격선·선호도가 높은 곳에 지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수능 체감 난도가 높아 일찌감치 재수를 결심한 재학생이 예년보다 많다"며 "이들이 합격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상향·소신 지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전형 방법을 바꿔 선전했다는 평가다. 서울대 자연계열과 유니스트는 이번 정시에서 과학탐구Ⅱ 1과목 이상 필수 응시 조건을 폐지했다. 이에따라 자연계열 학생들의 지원이 늘었다. 서울 주요대학 중 경쟁률이 가장 크게 상승한 성균관대도 이번 정시에서 탐구 반영 비율을 전년 대비 인문계열은 5%, 자연계열은 10% 낮췄다.
교대 경쟁률 상승은 교직 선호도와 관계없이 합격 가능성에 대한 기대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수시에서 정시로 대규모 이월 인원이 발생했고 지난해 합격선 하락이 맞물려 지원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실제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학년 대입에서 10개 교대와 3개 초등교육과는 수시 모집 정원 2485명 중 750명, 즉 30.9%를 정시로 이월했다. 전년(507명) 대비 243명, 10%p나 증가한 수치다.
지역 의대 경쟁률이 서울권 의대보다 두 배가량 높은 것도 선호도가 아닌 의대 전형 구조에서 기인한다. 지방 의대는 수시에서 대학이 위치한 권역 내 고교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인재전형'의 비중이 높은 반면 정시는 일반전형의 비중이 높다. 최근 의대 지망생은 정시에서 모두 의대를 지원하는 경향이 짙다. 수도권 의대 지망생 중 중하위권이 지역 의대에 지원하며 지방 의대 경쟁률이 서울권 의대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정시 경쟁률 급등, 파장은? = 경쟁률에 따라 합격선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쟁률이 높으면 그만큼 성적이 높은 지원자가 늘어나 합격선이 상승하고 경쟁률이 낮으면 반대로 합격선이 하락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특히 정시는 성적을 줄 세워 당락을 결정하는 정량평가이다 보니 경쟁률이 중요한 변수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번 주요 대학의 정시 합격선도 경쟁률만큼 상승할까? 전문가들은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다. 이 입시평가소장은 "정시는 물론 수시조차 경쟁률과 입결을 비교했을 때 연관도가 의외로 낮다"며 "상위권 대학·모집 단위일수록 경쟁률이나 수능 난도에 따른 합격선 변화가 적다"고 밝힌다.
특히 최근 정시는 막판에 경쟁률이 급등하는 추세다. 접수 종료를 앞둔 2~4시간 사이 지원자가 몰린다. 서울대는 마감 직전인 1월 5일 오후 3시 경쟁률이 2.48:1에 그쳤으나 3시간 후 공표된 최종 경쟁률은 4.71:1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서울 주요 15개 대학 중 대부분이 마감일 당일 최종 지원자의 50% 이상이 몰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눈치작전은 지원자들의 기대와 달리 별 효과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점수가 부족한 '허수' 지원자가 많아 경쟁률이 높아져도 합격선은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높아진 경쟁률에 따른 혼란이다. 합격 예측이 어려워져 수험생과 학부모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특히 높은 경쟁률에 지원 자체를 포기한 학생이나 적성과 관계없이 합격을 목표로 지원한 학생들이 결국 재도전에 나서기 쉽다. 여기에 의대 정원 확대까지 예고돼 있어 향후 정시에서 졸업생들의 합류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다시 입시 예측 가능성을 낮추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신뢰성 있는 공적 정보 제공 필요 = 입시는 예측 가능성이 하락할수록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용하거나 특정 정보를 맹신하게 해 판단을 흐리는 이들이 늘어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능과 정시와 관련한 공적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수능 성적표의 점수 표기 방식을 변경하거나 실제 성적에 기반한 공공 모의지원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현재 수능 성적표에 원점수를 제공하지 않아 숨겨진 변수가 많기 때문에 입시 피로도를 높이고 유무형 자원이 대규모로 낭비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지금의 난맥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 공공기관이 모의지원 서비스를 운영하는 안을 검토할 만하다"며 "사용자 친화적인 환경으로 개선한다면 정시의 불확실성을 일정 부분 해소하고 공교육의 입시 지도 전문성 확대 및 신뢰 제고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기수 기자 · 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