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양날의 검 '한반도 두 국가' 주장

2024-01-24 11:46:57 게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세밑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데 이어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헌법의) 해당 조문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거나 "공화국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모든 원인은 남쪽 탓으로 돌렸다.

김일성·김정일의 "조선은 하나" 기존 관념 뒤엎은 파격적 주장

분단 이후 이제껏 남북 정치지도자 가운데 감히 '민족'이나 '통일'을 뒤로 제쳐놓는 주장을 편 사람은 없었다. 특히 김일성·김정일의 "조선은 하나다"라는 기치 아래 '민족제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떠받들어 온 북한체제를 생각한다면 기존 관념을 송두리째 뒤엎는 파격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노태우정부 시절인 1992년 평양서 열린 남북총리급회담 취재차 방북한 이래 남북 합동세미나 등 북한 인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며 한 핏줄임을 재삼 확인하던 기억이 생생한 필자로선 착잡함을 넘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기존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김정은의 '두 국가론'이 함축한 의미와 어떤 배경에서 이런 주장이 나왔고 그 파장은 어디까지 갈지를 놓고 다양한 분석들이 나온다.

워낙 메가톤급 발언인데다, '불변의 주적' 등 온갖 험한 말들과 뒤섞여 있어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도 해석의 편차가 크다. 특히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조건절'을 연동시키며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는 투의 북한 특유 언술체계 때문에 어느 부분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해석은 크게 달라진다.

김 위원장의 따로 살 결심 표명은 '양날의 검'이다. 의미 분석과 성공 여부, 향후 전망도 엇갈린다. 북한의 행동은 한미일의 전방위 압박과 '흡수통일' 우려에서 벗어나려는 '방어적 성격'이 짙다는 분석은 한축이다. 다극화시대가 열리고 중국과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가 증진되면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력갱생과 정면돌파로 체제유지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근본적 변화추구라는 해석이다.

반면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의 군사대립과 전쟁위기가 높아졌다는 관측은 또 다른 축이다. 미국의 대표적 '대화파' 인사로 분류되며 북한·북핵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로 평가받는 로버트 칼린과 지그프리드 해커가 '38노스' 공동기고문에서 주장한 "김정은은 전쟁을 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으며 한국전쟁 직전과 같은 위험한 상황"이라고 경고한 글이 대표적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크게 실망한 김정은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추진을 포기했고,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전쟁을 결심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무게감 때문인지 긍·부정 논란이 무성하다.

어느쪽 해석이 더 진실에 가깝든 북한이 대화와 협상보다는 '강대강' 대치국면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에는 이견이 없다. 한반도에서 기획된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우발적 충돌에서 비롯된 확전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9·19군사합의마저 백지화된 터에 남북간 극악한 말폭탄과 '즉강끝' 류의 허세가 씨가 돼 순식간에 확전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극우인사들을 통일부장관이나 국방부장관으로 기용하고 한미연합훈련을 강화하는 등 윤석열정부의 자극적인 행태가 위험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쟁위기 중심축은 북미간 대결구도 … 윤석열정부 강경론 기름 부어

한반도 전쟁위기의 중심축은 북한과 미국의 지속적인 대결구도 때문이다. 중국을 견제·포위하는 방편으로 한미일 삼각군사공조를 강화하고 이를 대북위협 탓으로 외피를 두르는 상황에서 대결구도는 변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온 국민이 '평화'의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제까지 행태를 볼 때 윤석열정부가 정책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무망해 보인다. 국민과 시민사회의 역할이 더 커졌다. 상황을 평화롭게 관리하면서 민족간 화해·협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정색하며 촉구해야 한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