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사법농단'은 누가 한 건가

2024-01-29 11:35:38 게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 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100여명이 넘는 판사들이 조사를 받았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이 구속된 '사법농단' 사건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됐다. 그러면 사법농단은 도대체 누가 했나. 검찰과 당시 집권세력인가, 아님 사법부의 제식구 감싸기에 진실이 묻힌 건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검찰이 무려 47개 범죄에 대해 기소한 것도 놀라웠지만, 1심 재판부가 4시간이 넘게 모두 '무죄'를 반복하며 판결문을 읽은 것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집권세력과 검찰이 사법부 폄훼하고 누명 씌웠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판사들은 14명이다. 이 가운데 6명은 무죄가 확정됐고 2명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번에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최고위직인 전직 대법관들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이다. 유죄판결을 받은 판사는 2명으로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남았다. 내달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1심 판결이 마지막으로 내려질 예정이다. 비록 1심 판결이지만 이제까지 관련자들의 재판으로 볼 때 사법부의 판단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재판 결과만 보면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사법농단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집권세력이나 검찰이 사법부를 폄훼하고 누명을 씌어 농단한 듯하다.

애초 법조계에선 검찰수사가 무리하다는 시각이 많았다. 인사파일 등 민감한 사법부 내부자료들이 통째로 검찰로 넘어갔고 판사들 사이에선 "검사 눈치를 봐야 한다"는 자조가 나왔다. 국민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위신은 추락했다. 사문화 되다시피한 직권남용죄 적용에 대한 우려에도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직권남용죄 기소 건수는 2016년 24건에서 국정농단·사법농단 양대 수사가 진행된 2018, 2019년 각각 53건, 40건으로 2배 수준 늘었다. 검찰권 남용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던 이유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가 '사법부 장악'을 하려다 벌어진 참사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 안팎의 여론에 밀려 "검찰수사 협조"를 공언하며 대법원 안방문을 열었고, 문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이례적으로 "사법농단 의혹규명"을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첫 공판에서 "대한민국이 법의 지배가 이뤄지고 법이 모든 사람을 보호해 그 아래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로 유지될 것이냐, 아니면 무소불위로 흐르는 검찰의 칼날에 숨을 죽이고 전전긍긍하며 떨며 살아야 할 검찰공화국이 될 것인가. 이번 재판이 앞날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우연인가. 양 전 대법원장의 예언대로 됐다. 사건을 지휘했던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대통령이 됐다. 수사팀장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법무부장관에 이어 여당 대표가 돼 미래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검사출신들은 대통령실 금융기관 등에서 요직을 꿰찼다. 법정에 선 사람들은 명예가 훼손되고 세월 속에 어깨가 굽어졌지만 '윤석열 사단' 수사팀들은 잘 나가고 있다. 사법농단 재판 과정에서도 '아니면 말고'식의 기소독점에 대한 통제와 책임 문제가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로 드러났다.

사법부는 '제 식구 감싸기' 의혹에서 자유로운가

비록 관련자들이 무죄를 받았더라도 사법부 위상이 흔들린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법원 역시 양 전 대법원장에 앞서 재판개입 혐의로 기소된 일부 법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부당·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 "위헌적 행위"라는 전제를 달았다. 형사처벌은 못하지만 책임이 무겁다는 의미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최초로 폭로했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재판 개입 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지난 1월 마무리된 국정농단 재판에서는 58명이 기소돼 48명이 유죄를 받은 것과 비교해서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참에 '고무줄 잣대'라는 직권남용죄 등에 대한 법률 보완도 논의해야 한다.

누구나 사법부 독립과 공정한 재판을 얘기한다. 당연히 사법부 스스로 '헌법과 법률에 의해 공정하게 심판'하는 게 필수조건이다. 여기에 3대 헌법기관인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가 서로 분립하면서도 지탱해줘야한다. 세 다리가 균형을 잡아야 솥이 바로 설 수 있다.

차염진 기획특집팀장
차염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