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반도체 기술전쟁의 현재와 미래

2024-02-01 00:00:00 게재

반도체 기술전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미국 인텔은 더 작고 빠른 칩을 만들기 위해 2022년에만 970억달러(3사 합계) 넘게 투자했다. 2025년까지 2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칩을 생산하기 위한 경쟁이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이 둔화되면서 후발주자들이 선두그룹을 맹렬히 추격 중이다. 무어의 법칙이란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가 주장한 반도체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도달하면 반도체 산업은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새로운 대안이 없다면 20년 뒤 전통산업으로 전락할 것이다. 반도체가 철강산업처럼 될지 논쟁여지가 있지만 무어의 법칙 둔화는 반도체 산업에 이미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두와 후발그룹 사이 좁혀진 격차, 중국에 절호의 기회

인텔과 중국 최고 칩 제조업체 SMIC 간 기술격차는 많이 좁혀졌다. 인텔은 SMIC보다 최소 4~5년 이상 앞서 있었다. 칩 제조 측면에서 2세대 이상에 해당한다. 현재 인텔은 약 3년, 즉 1세대 반 정도 앞섰다. 미국의 수출규제 속에서 반도체 역량을 발전시키려는 중국의 결단이 주효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선두그룹이 첨단혁신을 이루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SMIC는 중국 화웨이의 도움으로 현재 7nm 기술을 넘어 5nm 칩 생산을 목표로 한다. TSMC와 삼성은 현재 3nm 칩, 인텔은 5nm 칩을 생산하고 있다. 3개 선두업체들은 2025년까지 2nm 칩을 양산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중이다. IBM에 따르면 2nm 공정은 손톱 크기(대략 150㎟)에 50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혁신은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AI컴퓨팅을 실행하는 데 적합한 2nm 칩에 필요한 초기 투자액은 300억달러에 육박한다. 이는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마이크로컨트롤러 칩 공장을 짓는 것보다 10배나 많은 금액이다. 아이폰 프로세서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도 지난 10년 동안 10배 증가했다.

높은 비용구조가 혁신 속도를 늦추고 있다. 과거에는 2년마다, 지금은 3년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SMIC로서는 선두그룹과 격차를 좁힐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반도체 기술전쟁에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있다. 첨단 칩 ‘패키징’이다. 패키징은 TSMC가 칩 소형화·성능향상을 위해 내놓은 방안이다. 패키징은 여러개 칩을 쌓아 패키지를 만드는 방법이다. 첨단 패키징에는 섬세하고 복잡한 장비가 필요치 않으며 이 기술을 이용해 7nm급 성능을 5nm 또는 3nm급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중국은 첨단 칩 ‘패키징’으로 미국의 수출규제를 극복했다.

칩 패키징의 등장은 중국에 잠재적인 호재가 됐다. 중국에게 이 분야의 성공은 경제안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SMIC는 2020~2023년 240억달러를 투자했다. 같은 기간 총매출보다 더 많은 액수다. SMIC는 TSMC와 삼성전자에 몸담았던 베테랑 량멍쑹(梁孟松)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개발팀을 통해 5nm 및 3nm 칩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웨이 역시 2019년 이후 4년 동안 연구개발에 약 810억달러를 쓸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해외 첨단 제조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면서 화웨이의 야망은 흔들렸지만 SMIC와의 협력을 통해 지난해 7nm 프로세서를 장착한 스마트폰 생산에 성공했다. 서구 반도체 생산 관련 국가들은 화웨이와 SMIC의 성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반도체 물리학 넘어서는 양자 기술이 미래 선택지

반도체 선두그룹은 2년 내 달성이 예상되는 2nm 칩을 넘어 1.4nm 칩을 개발하고 있다. 2032년까지 1nm 칩 생산이 목표다. 10년 전만 해도 3nm 칩은 거의 상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양산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은 아직 유효하다.

컴퓨터는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반도체 물리학을 넘어선 후속기술에 기존의 수백배 자본이 투자될 것이다. 양자의 물리학적 성질을 이용하는 기술이 미래의 선택지다. 특정 알고리즘을 위해 서버를 양자컴퓨터와 통합하면 컴퓨팅 성능을 엄청나게 향상시킬 수 있다. 양자기술은 석기에서 철기시대로 뛰어넘는 것에 비견된다.

양자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시작됐다. 퀀텀 내셔널리즘(Quantum Nationalism, 양자 국가주의)이 큰 흐름이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는 데 20년이 걸릴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의 양자 전략을 수립하고 인재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과학자들이 존경받는 국민정서가 절실하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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