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기대난망 제3지대, 무슨 가치 차이?
정치원로인 윤여준 전 장관은 얼마 전 방송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국내에서도 정치테러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것과 관련, “이게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폭력성이 굉장히 심해지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한 뒤,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피살,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등을 열거하며 “지금은 광기의 시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방송에 나와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이 병립형 회귀를 전당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한 데 대해 “전 당원 투표 운운하던데 원래 전 당원 투표 간다는 게 제일 불길한 거다. 최악으로”라며 “히틀러도 ‘국민만 보고 간다’고 그랬다”며 질타했다.
이처럼 정치원로들은 작금의 국내외 정치상황을 갈 데까지 간 ‘최악’으로 보고 있다. 미국만 해도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서방국가들이 전전긍긍 하고 있다. 트럼프가 컴백할 경우 미국 우선주의가 더욱 극성을 부리면서 각국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극한 혼란에 빠져들 게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서방과 제3세계에서도 극우정당이 급신장하고, 극우정권이 속속 집권하는 등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지지율이 30% 안팎에서 헤매고, 제1야당 대표도 마찬가지 낙제점을 받아 제3세력 출현에 대한 기대감이 역대 최고치로 높다.
제3세력 기대감 높지만 신선감도 현실성도 부족
문제는 이런 기대를 충족시킬 제3세력이 과연 존재하는가이다. 미국만 해도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를 질타하는 제3 후보들이 출현하기는 했으나 대다수 유권자들의 관심밖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높은 제3지대 출현 요구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뛰쳐나와 각자 창당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신당들 지지율은 초라한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이 와중에 힘을 모으기는커녕 모였던 세력들조차 으르렁거리며 쪼개지는 핵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핵분열의 명분은 ‘가치’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무슨 가치? 구체적으로 물으면 애매한 ‘동문서답’이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이 어떻고, 양극화가 어떻고, 파탄 직전인 민생경제가 어떻고 등등이다. 그래서 어떻게 풀자고? 그때부터 백가쟁명이다. 이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역대정권도, 거대 여야도 마찬가지다. 온갖 대책을 내놓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돼 왔다. 제3세력이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도 과거에 다 나왔던 얘기들이다. 신선감도 없고 현실성도 없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최대 현안인 저출산 대책만 해도 그렇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국민의힘은 육아휴가 대폭 확대 등 ‘육아’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내놓았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출산 자녀 숫자가 많을수록 많은 혜택을 주는 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포커스를 맞췄다. 저출산의 근원이 살인적 아파트값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나마 민주당이 시늉이라도 낸 모양새다. 하지만 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국가 소멸’까지 우려되는 최악의 저출산을 풀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전체 주택시장에서 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코끼리 비스킷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시장에서 어떻게 아파트거품을 뺄 것인가가 핵심이다.
아파트값이 폭등을 거듭하던 노무현 정권 때 일이다. 당시 강남 모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6000만원을 돌파한 것이 화제에 올랐다. 지금은 평당 억대의 고가 아파트가 즐비하나 당시는 모두를 경악케 만든 분양가였다. 일부 부동산업계 바람잡이들은 “곧 평당 1억까지 오른 것”이라고 했다.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행장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끝물이네요. 곧 아파트값이 떨어질 거예요. 왜냐고요? 아니 평당 6000만원이 1억원으로 올라봤자 수익률이 얼마나 돼요? 그럴 바에는 성장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게 백배 낫죠. 게다가 부동산은 한번 물리면 돈을 뺄 수가 없잖아요.”
김 전 행장 예언은 적중했다. 그후 미국의 부동산거품 파열 등 국내외 요인이 겹치면서 아파트 거품은 급속히 빠졌고, 이명박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권까지 10년간 부동산 경기는 맥을 못췄다. 그러다 문재인정권 출범 후 아파트값은 폭등을 재연했고 저출산은 세계 최악으로 곤두박질쳤다.
국민은 잘못 솔직히 시인하는 정치를 보고싶어 해
솔직히 기성정당이든 신당이든 정치에 대한 기대는 거의 제로(0)다. 대부분의 현안은 시장법칙에 따라 생성 확산 소멸된다. 정치가 할 일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위기관리일 뿐이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는 잘못한 걸 솔직히 시인하고 고치는 것뿐이다. 워낙 뻔뻔한 모습을 많이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박태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