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공정위 … 주말에 출근한 공무원 과로사
밀린 업무 해결하느라 토요일도 출근해 일하다 쓰러져
‘순직·공무상재해’ 인정 까다로워 "유가족이 입증해야"
설 명절을 앞두고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이 뒤숭숭하다. 50대 5급 사무관이 주말까지 출근해 일하다 쓰러져 사망한 사건 때문이다. 동료 직원들은 과로사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카르텔 척결’을 강조한 이후 공정위 일거리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 물가안정이 핵심정책으로 떠오르면서 공정위가 물가이슈까지 떠맡았다. 인원은 그대로인데 할 일이 두 배 이상 늘면서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작년부터 업무량 크게 늘어 = 7일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사무관 A씨가 세종정부청사 공정위 사무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세종정부청사 개청 이래 공무원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부터 공정위 전반에 업무 부담이 커지면서 이런 일까지 발생했다는 것이 동료직원들의 전언이다. 동료직원 B씨는 “올해 들어 업무량이 더 늘면서 A씨를 포함한 직원들의 야근도 잦아졌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A씨가 소속된 과의 경우 직원은 5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한해 처리하거나 조사 중인 사건 건수만 30여건에 이른다. 직원 1명이 동시에 여러 사건을 조사도 하고 마무리도 지어야할 상황인 셈이다.
또 인사관련 변화로 A사무관의 업무부담이 더 커졌다는 후문이다. A씨는 설 직후 있을 인사에서 서울사무소 발령이 예정됐다. 그래서 최근에는 조사 중이던 사건을 마무리하고 인수인계를 준비하기 위해 더 동분서주했다는 것이다.
A씨가 소속된 C과장은 “적당히 인수인계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완벽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무리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소방관은 순직, 공정위는? = 공정위 직원들이 더 뒤숭숭한 이유는 최근 순직한 소방관 2명에 대한 예우와 대비돼서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두 소방관에 대해서는 국민적 추도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남화영 소방청장이 추도 메시지를 내는가 하면, 전국에 분향소가 마련됐다.
하지만 공정위는 내부적으론 유가족 지원에 나서되 밖으로는 ‘쉬쉬’하는 기류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장례식장이 마련되자마자 조문을 하고 간부들에게 ‘유가족 지원’을 강조했다고 한다. 과장급 이상 직원들이 성금을 걷어 ‘조의금’을 냈고, 나머지 직원들은 현재까지 성금을 모으는 중이다. 다만 공정위는 언론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더구나 A사무관이 순직으로 인정받고 공상(공무상 재해)처리가 되기까지 과정은 험난하다.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와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순직과 공상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인사혁신처가 밝힌 최근 3년간(2019년~22년) 집계를 보면 공무원의 순직 인정 비율은 60.5%에 머물고 있다. A씨의 사망이 직무와 관련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도 유가족들의 몫이다. 늦장가를 간 A씨는 미망인과 초등학생인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물가안정까지 떠맡은 공정위 = A사무관이 소속된 가맹·유통 분야 업무부담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국정감사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공정위 국정감사는 ‘가맹 국정감사’라고 불릴 정도였다. bhc와 버거킹 등이 2023년 국정감사에서 ‘갑질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올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 착취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 볼 방침이다. 특히 사모펀드가 소유한 프랜차이즈에는 직권조사까지 예고했다.
공정위 업무량 전반이 폭증한 것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권 카르텔’ 발언과도 관련이 있다. 지난해 윤 대통령은 금융권과 통신사, 학원 등을 겨냥해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판하며 공정위에 엄정조사를 주문했다. 카카오 등 기업을 특정하며 ‘부도덕한 기업’이라고 낙인찍기도 했다. 위에서 ‘기침’ 소리를 내면 아래는 ‘몸살’을 앓게 마련이다.
곧이어 공정위의 전방위적 조사가 시작됐다. 최근에만 해도 공정위는 은행의 담보대출과 관련한 조사를 벌인 끝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윤 대통령이 ‘소비자요금 부담경감’을 지시한 뒤 이동통신사와 보험, 증권사에 대해서도 단말기 지원금과 보험금 등을 담합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물가안정이 국민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공정위 조사 폭은 더 넓어졌다. 공정위는 편의점 CU·GS25(GS리테일)·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미니스톱·이마트24 등 유통업계 조사에도 나서 유통구조를 살펴보고 있다. 원가가 내려도 먹거리 가격은 내리지 않자, 주요 식품 가격 추이를 파악 중인 것이다.
이밖에도 공정위는 통신 3사의 판매장려금 담합 의혹과 주류 도매업체의 납품가 담합 의혹, 돼지고기 가공업체의 가격 담합 의혹, OTT 서비스 업체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의혹 등도 조사 중이다. 다만 공정위 관계자는 “A사무관이 담당한 업무전반과 ‘이권 카르텔 척결’과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