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서 중대사망 재해 잇따라 발생
금속노조 “정부가 안전시스템 붕괴 불렀다” … 중대재해법 첫 기소 원청업체 대표에 집행유예
지난달 27일부터 5~49인 중소사업장에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이 적용 시행되는 가운데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 7일 오전 11시 40분쯤 경기 파주시 한 아크릴 제조공장에서 60대 근로자 A씨가 200kg 상당의 아크릴판에 눌려 사망했다. A씨는 납품을 위해 창고에 적재된 아크릴을 옮기는 작업 중 지지대가 떨어지면서 10kg의 아크릴판 20장에 눌린 것으로 전해졌다.
#. 같은날 오전 9시 26분쯤 경북 칠곡군의 한 알루미늄 제품 공장에서 50대 집게차 기사 B씨가 고철을 화물차에 옮겨 싣던 중 떨어진 고철더미에 맞아 숨졌다. B씨는 공장 직원이 아니고 고철을 사러 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 7일 오전 9시 20분쯤 경북 함안군 한 육묘장에서 수박 묘종 잎 제거작업하던 70대 일용 근로자 C씨가 비닐하우스 내부 단열용 자동개폐기에 옷이 말려 들어가 우측 팔 등이 기계 회전축에 끼면서 사망했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50인 미만(5~49인) 중소사업장의 경우 준비 부족과 영세 사업장 부담 등을 고려해 적용 시기를 2년 유예했다. 지난달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고 있다.
6일에는 인천 동구 현대제철에서 오전 10시 50분쯤 폐수처리 수조에서 찌꺼기(슬러지)를 옮기던 중 원인 미상의 가스중독으로 D(34)씨 등 하청업체 노동자 6명과 현대제철 노동자 1명이 쓰러졌다. 하청노동자 D씨는 사망했고 2명은 현재 의식이 없는 위중한 상태다. D씨가 소속된 업체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현대제철과 함께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는다.
고용노동부는 이들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 83만7000곳을 대상으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했는지 스스로 진단하는 ‘산업안전 대진단’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하청근로자가 사망한 사고로 처음 기소된 원청업체 대표이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4단독(김수영 부장판사)는 7일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 하청근로자를 숨지게 한 혐의(중대재해법 위반 등)로 기소된 LDS산업개발 김인선(65)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원청업체 소속 현장소장에는 징역 5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하청업체인 IS중공업 현장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에 각각 벌금 8000만원과 15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2022년 3월 29일 오전 7시30분쯤 대구 달성군 한 공장 신축공사 현장에서 LDS산업개발로부터 철골공사를 하도급받은 업체 소속 근로자가 안전대를 걸지 않은 채 11m 높이 작업대에서 볼트 체결작업을 하다 추락해 숨졌다.
김인선 대표는 근로자 추락 위험이 있는 사업장 경영 책임자로서 안전보건 경영방침 마련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잇따른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6일 성명에서 “정부·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기업 편향 행보가 노동안전을 비용의 논리로 짓뭉개 나타난 결과”라며 “노동안전 활동을 짓밟는 데 혈안인 기업에 어떤 철퇴도 가하지 못한 정부가 안전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대재해에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안전 활동 참여를 요구해도 원청은 모르쇠다.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것을 이유로 기업이 노동자에 손해배상까지 거는 한국 사회다”면서 “정부는 영세사업장 중대재해법 유예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하지 말고 처벌조항을 강화하는 개정을 통해 법의 효력을 높일 방안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