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공학자 지렁이, 탄소순환 역할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할수록
온난화 속도 늦출 수 있어
지구 온난화 속도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전지구 탄소순환 체계 안정화는 필수다. 탄소순환은 대기뿐만 아니라 토양에서도 이뤄진다. 토양 유기탄소(SOC) 역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물이 있으니 바로 ‘지렁이(earthworm)’다.
지렁이가 땅속에서 꿈틀거리며 굴을 파고 먹이활동 등의 과정은 해당 지역에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지렁이가 판 작은 굴들을 통해 물과 공기가 토양 속으로 더 쉽게 침투할 수 있게 되면서 호기성 미생물의 활동을 촉진하는 등 여러 역할을 한다. 이른바 ‘생태계 공학자’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토양 유기탄소 함량 증가에 기여 = 지렁이는 외형적으로는 다소 징그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토양 탄소순환과 생물다양성 유지에 큰 역할을 하는 효자 생물이다.
19일 국제 학술지(SCI급)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의 논문 ‘인도 케랄라의 열대 토양에서 사는 지렁이에 의한 토양 유기탄소 농축: 첫 번째 보고서(Enrichment of soil organic carbon by native earthworms in a patch of tropical soil, Kerala, India: First report)’에 따르면, 지렁이의 생물다양성이 더 높은 지역일수록 토양의 탄소 저장 기능이 더 좋아졌다. 다양한 지렁이들의 활동이 토양 미생물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결과적으로 토양 유기탄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다.
이는 △해당 지역의 자생 지렁이 100마리를 풀어 넣은 뒤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나일론으로 만든 망사를 이용해 울타리를 치고 사료 보충제를 준 경우 △자생 지렁이를 추가로 넣지 않고 울타리는 없지만 사료 보충제를 추가한 경우 △자생 지렁이를 추가로 넣지 않고 울타리도 없고 사료 보충제를 추가하지 않은 경우 △사람의 간섭이 일어날 수 있는 곳에 별다른 추가 조건 없는 경우(대조군) 등을 1년간 분석한 결과다. 토양 탄소 저장고의 변화는 해당 연구 영역의 토양 샘플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면서 비교했다. 토양 유기탄소 함량은 실험 전반에 걸쳐 대조군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자생 지렁이를 풀어 넣은 영역에서 토양 유기탄소 함량 증가율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역설적으로 기후변화 영향에 민감 = 이처럼 토양 탄소 순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렁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후(강수량과 온도)’였다.
37개국 연구자 140여명이 전세계 지렁이 분포와 다양성 및 개체 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후 변수와 서식지 피복은 토양 특성보다 지렁이 군집 형성에 더 중요했다. 이는 곧 기후와 서식지 변화가 지렁이 공동체와 그들이 제공하는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연구는 지렁이 다양성과 풍부함, 바이오매스 패턴을 예측하기 위한 기초로 57개국 9212개 지역에서 샘플링한 지렁이 군집의 글로벌 데이터세트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전세계 지렁이 다양성 분포(Global distribution of earthworm diversity)’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