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의사파업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검토
시민단체, 전공의 집단사직 공정위 고발 예고
사안 커 서울사무소 아닌 본부 이관 가능성
전공의 사업자성·의사협회 강제성 등이 관건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진료현장 이탈 등 ‘의사 파업’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실상 법 위반 여부 검토에 나섰다. 전공의들이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인 사업자 지위를 가졌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21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오는 22일 대형 종합병원 ‘빅5’ 병원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행위에 대해 고발할 방침을 밝히자 공정위가 상황 파악에 나섰다. 공정위는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협조를 받아 이번 사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시민단체 경실련은 전날 성명서를 내고 “불법행위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의사에 대해서는 공정위 고발 등 법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어서 신고가 들어오면 신속하게 법률검토를 할 것”이라며 “전공의를 사업자라고 볼 수 있는지가 열쇠”라고 말했다.
◆전공의, 사업자로 볼 수 있나 = 공정거래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공의들이 사업자 지위를 가졌는지를 우선 검토 대상이다. 공정위는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의료 반발 파업 당시 의사협회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전공의 집단행동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공정위 안팎의 의견이다.
전직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개업의사의 경우에는 사업자로 볼 수 있지만 전공의는 사업자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의사협회에서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일단은 외관상 전공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실련 측은 이번 집단 진료중단 행위가 담합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병원에 소속된 수련의·전공의를 사업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공정위 내부 분위기다. 전공의의 경우 노동자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2022년 공정위가 사업자단체로 인정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와도 다른 부분이 많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 왜 ‘자발적 사직’ 강조? = 의사협회가 ‘자발적 사직’을 강조하는 만큼 이전 파업 당시 적용했던 단체행동 강요행위에 대한 ‘부당한 제한’ 혐의도 현재로서는 적용하기 어려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 단체로 분류되는 대한의사협회가 전공의들에게 집단행동을 부추겼는지 등을 주시하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2000년·2014년 발생한 유사 사건 당시 의사협회에 현행 공정거래법 51조 1항 3조(사업자 단체는 구성사업자의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면 안 된다)를 적용해 시정명령 등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번에도 해당 조항을 적용할지 저울질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2000년 사건에 대한 공정위 처분은 소송 끝에 2003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정당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김재정 전 의사협회장 등 9명의 유죄(공정거래법 위반 등) 확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2014년 사건에 대한 공정위 처분은 2021년 9월 대법원에 의해 취소됐다.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 등 2명은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
승패를 가른 건 의사협회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강제성’ 여부였다. 강제성을 인정받은 2000년 사건에서 대법원은 “의사협회가 의사대회 당일 휴업·휴진, 참석 서명, 불참자 불참사유서 징구를 결의하고 의사들에게 통보한 행위는 단체적 구속”이라고 판결했다. 이번에 의사협회가 ‘자발적 지원’을 강조한 것도 이런 판례를 의식해서다.
◆공정위, 본격 조사 예고 = 공정위는 신고가 접수되면 이번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본격 검토할 예정이다.
통상 신고 접수는 지방공정거래사무소에서 담당하지만 사안이 큰 만큼 본부로 이관될 가능성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인지에 대해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사안이 큰만큼 본부에서 살펴볼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가 현행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 5058명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11시 기준 전체 전공의의 95%가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55%(6415명)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 중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