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건의에 대한 정부의 화답
5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이 적용됐다. 지난 3년 간 정부와 기업 모두 지지부진한 준비 중에 지난해 4월 초 중대재해에 대한 최초 판결이 나오면서 유예기간 연장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입장은 준비 안됐으니 유예 연장을, 노동자 쪽은 중소기업의 산재사망율이 높으니 예정대로 시행할 것을 주장해 왔다. 양쪽 다 일리 있는 주장이고 적용 제외나 폐지를 주장하진 않았다.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장대교량의 경우에 홍수 대비를 위한 확률 강우량은 통상 100년에 한번 내릴 수 있는 큰 비의 확률을 기준으로 한다.
개별 중소기업의 경우 업종에 따라 중대재해 발생확률은 각기 다르나, 노동자 50명의 제조업 사업장은 평균 200년에 한번 꼴, 5인의 경우는 2000년에 한번 정도다. 100년에 한번이라는 국가 기준을 생각하면 중대재해에 대한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생각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더군다나 50인 미만 사업장은 사회적 관심도 부족하고 안전관리자 선임 등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정한 의무의 상당 부분이 적용 제외돼온 안전 사각지대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지원을 위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지난해 말에 발표했다. 늦기도 했지만 국가 차원의 전략은 물론, 사업장의 현실을 제대로 감안하지 못한 대책으로 보인다. 1월 27일 현장방문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업주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한 건의를 잘 헤아려야 한다.
정부가 취해야 할 중대재해 감소 전략
정부의 전략은 개별 중소사업장의 재해를 타깃으로 하는 조준사격이 아닌, 중소사업장 전체 재해를 감소시킬 화망 형성이다. 83만개라는 적용 대상 중소기업의 수, 예측 불가능한 사고의 속성, 개별 사업장의 낮은 발생 확률, 그간의 산안법 적용 제외, 상대적으로 낮은 안전의식 등의 여건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개별 사업장의 재해예방을 위한 전문적이고 다양한 조치는 다음으로 하고, 우선은 수용가능한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전체 중소기업에서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기본적인 조치를 규범화 시켜 중소사업장군 전체의 중대재해를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의 대책은 외부 전문가들을 동원한 개별 사업장 점검 중심이다. 외부인의 일과성 점검은 주로 설비 장소 시설 등 물적인 면을 보게 된다. 보관 제조 운반이 탱크나 배관과 같은 설비 속에서 이뤄지는 자동화된 화학플랜트의 경우는 어느 정도 유효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인력작업이 개입되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사고가 작업자의 관습화된 행동이 주요 변수다. 작업 과정과 행동을 살펴 그 배경요인들을 해결하는 인적측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부의 일방적인 외부인의 점검은 개별 사업장의 생산 조건과 환경을 고려하기 어렵다. 사업장에서 수용하기 어렵거나, 실효성 없는 조치를 잔뜩 쏟아내서 사업주의 거부감과 짐만 지우는, 더욱이 83만개라는 대상을 고려하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성싶다. 그런 행사는 실적은 있어도 효과를 얻기 어렵고, 효과에 관한 객관적 증거도 없다.
기본적인 안전규칙의 규범화
정부는 사업주 건의의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그 행간에 “내 사업장의 조건과 형편에 적합한”이라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필요한 안전조치가 사업장에서 이행되려면 생산 특성과 조화, 설득력이 있는 근거, 재정과 인력 형편 등이 고려돼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찾아서 이행하는 것이다.
사업주들의 건의에 적합한 매우 유용한 정보가 사장되고 있다. 매년 10만여건 정도 발생되는 재해정보다. 이 재해들을 조사분석해서 세분화된 업종 생산제품 공정 규모 등으로 분류해 그 자료를 기업에게 제공하는 것이 사업주들의 건의에 대한 합당한 조치다. 외부 전문가의 도움은 그 자료에서 적합한 조치들을 선정하고 그것을 이행할 절차와 업무분장 등의 체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조언일 것이다. 그도 사업주의 자발적 요청이 아니면 무효다.
정부는 사업장 특성에 적합한 기본적인 안전조치 이행을 중소기업군의 규범으로 만들어가야 하고 그 유인을 법 집행으로 해야 한다. 83만개 사업장 중 매년 수만개의 사업장이 이런저런 사유로 생겼다가 없어진다. 우리 사회가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안전조치까지 외면해서 중대재해가 발생된 극소수 사업장을 보호해야 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