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부 증원 요구에 ‘진퇴양난'…정부·의료계 양측 눈치
교육부, 총선 전 배분 …'규모 변경사유 명시' 압박에 대학 '곤혹'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배정 작업에 착수했다. 전공의·의대생 반발에도 증원 규모를 감축할 의사가 없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사실상 ‘정책 굳히기’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정부는 비수도권 의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배정하되 각 대학의 제출 수요와 교육 역량, 소규모 의과대학 교육 역량 강화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증원된 정원을 할당한다는 방침이다.
의과대학 교수·전공의·학생들이 2000명 증원에 격렬히 반대하는 상황이라 각 대학 총장 등 대학본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26일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2일 전국 40개 의대에 다음 달 4일까지 증원을 신청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교육부는 증원 정원과 관련해 △비수도권 의대 중심 집중 배정 △각 대학의 제출 수요와 교육 역량 △소규모 의과대학 교육역량 강화 필요성 △지역 의료 및 필수 의료지원 필요성 등을 고려한다는 기본적인 배정 원칙을 제시했다.
교육부는 수요 조사와 함께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배정 세부 원칙을 조율하고, 각 대학에 증원된 정원을 할당할 배정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복지부가 다음 달까지 의대 증원분의 학교별 배분을 마쳐 4월 총선 전에 확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배정 작업은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수요 조사 후 별다른 실사 작업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도출하기 위해 각 대학으로부터 수요 조사를 실시한 후 복지부 의학점검반 실사를 통해 각 의대의 증원분 수용 가능성을 이미 확인했다고 보고 있다.
◆정부 정책 굳히기 나섰다 = 교육부와 복지부의 행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강조한 만큼 이를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각 의대에 몇 명씩 배정하겠다는 등의 공식 발표를 하면, 의대 정원 정책을 철회하거나 축소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교육부 공문에 따라 증원신청 여부와 그 규모를 결정해야 하는 각 대학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정부와 구성원 사이에서 곤혹스런 상황”이라며 “정부 방침을 거부하자니 각종 국책사업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우리 대학만 신청하지 않거나 규모가 작아 해 볼 수 있다는 생각과 정부 방침만 따르자니 내부반발도 고심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주부터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면서도 “이런 ‘강대강 분위기’ 속에서 대학본부가 현재 취할 수 있는 최선은 마감 시한 직전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며 눈치를 살피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한 대학 관계자도 “공문을 전수했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논의가 본격화되면 의대를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의대 증원은 다른 학과들에 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고 복잡하다”면서 “우리 대학도 마감 시한 직전까지 다른 대학들의 동향을 등을 파악하며 눈치 보기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학 변심’ 견제 = 학학내 사정들을 잘 알고 있는 교육부도 대학들이 기존 입장을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한 견제에도 나섰다.
교육부는 각 대학에 수요조사 공문을 보내면서 지난해 말 실시했던 기존 수요조사와 다른 정원 규모를 제출할 경우 사유를 명시하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수요조사 때와 견줘 정원 규모를 변경해 신청할 경우엔 구체적인 사유를 명시하고, 그에 따른 대학의 교육 여건 추가 확보 계획도 포함하라고 덧붙였다. 대학에서는 지난해 수요조사에서 제출한 증원 희망 규모를 가급적 지켜달라는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당시 각 대학은 2025학년도 입시에서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을 희망 증원 규모로 제출한 바 있다. 최소 수요는 각 대학이 교원과 교육시설 등 현재 보유하는 역량만으로 충분히 양질의 의학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바로 증원이 가능한 규모를 의미한다. 최대 수요는 대학이 추가 교육여건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제시한 증원 희망 규모였다.
◆협상 중재 나선 교수들 = 이이런 가운데 의대 교수들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진행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지난 24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과 만나 “상호 상황을 공유하고 갈등 상황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이해와 공감대를 넓혔다”고 전했다. 반면 복지부는 ‘공감대’ 이상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201명 성균관 의대 교수 대상 설문 조사에서 가장 많은 24.9%가 500명 수준의 증원에 찬성했다며 “정부와 의협 모두 대승적으로 양보해야 한다”고 일종의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지방대 얼마나 배분되나 = 한편 정부가 ‘비수도권 의대 집중 배정’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한 만큼 이들 대학에 배정될 증원분도 관심사다.
현재 전국 40개 의대 정원 3058명 가운데 비수도권 의대 정원은 27개교, 2023명(66.2%)이다. 교육계와 의료계에서는 비수도권 의대 가운데에서도 소규모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이 많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비수도권 의대 중에선 건국대(충주)·대구가톨릭대· 을지대·울산대·단국대·제주대가 정원이 40명으로 가장 작다. 강원대·충북대·가톨릭관동대·동국대(경주)·건양대·동아대도 49명으로 ‘소규모 의대’에 해당한다.
그간 소규모 의대들은 의대 운영에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 정원이 지나치게 작아 운영상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해 증원을 꾸준히 요청해왔다.
현재 13개교에 1035명(33.8%)인 수도권 의대 정원 역시 비수도권만큼은 아니어도 소규모 의대를 중심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도 성균관대, 아주대, 차의과대, 가천대의 정원이 40명이다. 인하대 역시 정원 49명으로 소규모 의대로 볼 수 있다.
이번 의대 증원이 지역 의료여건 강화 차원에서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 인재 전형을 60% 이상 끌어올리는 대학 역시 배정에서 유리하게 고려될 수 있다.
앞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비수도권 의대에 입학 시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이 충원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