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의정갈등’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2024-02-27 13:00:09 게재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분위기로는 어느 한쪽이 굴복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김대중 박근혜 문재인정부에 이은 ‘4차 의정대립’이다. 의료계는 그동안 3차전에서 상당부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정부는 과거 ‘패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초기 강경진압’ 모드다. 우선 정부는 “2000명 증원 숫자에 대한 타협은 없다”며 선을 긋는다. 전공의 집단사직과 의대생 동맹휴학 등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법무부 행정안전부 검찰 경찰 등의 사정기관 수장들이 나서 “법대로”를 외치며 엄포를 놓는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6일 “근무지 이탈 전공의들에게 오는 29일까지 근무지로 복귀해달라고 요청했다”며 마지노선을 제시했다.

가장 강경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인 듯하다. “의사는 군인 경찰과 같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더라도 집단적인 진료거부를 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을 잘 보여준다. “의사 증원을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실패와 좌절을 거듭해 왔다”며 “이제 실패 자체를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다”고도 했다.

‘과거 정부가 못한 것을 하겠다’며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것은 역대 정치지도자들의 ‘로망’이다. 업적을 쌓고 싶은 욕구는 윤 대통령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은 ‘카르텔’ 혁파를 내걸고 노동계 등과 정면승부를 걸었고 지지층 결집 효과도 봤다. 더구나 의대증원에 대해서는 보수 진보를 떠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정부와 여권으로선 총선을 앞두고 손해볼 것 없다는 현실적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의사와 검사 대결 아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의료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20년 문재인정부 시절 정부가 제시한 의대 증원숫자는 한해 400명씩 10년간 4000명이었다. 의사들은 그것도 많다며 대대적인 진료거부를 해 좌초시켰는데 한해 2000명씩 5년간 1만명 증원이라고 하니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사들 다수는 여권 지지층이다. 의사들이 ‘믿었던’ 윤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한 의사파업 때 의사협회 간부들을 기소했던 검사가 윤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일까.

전직 의사협회장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겁을 주면 의사들은 지릴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고도 했다. 만약 의사들에게 이런 ‘특권의식’이 만연해 있다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의료계와 법조계는 우리 사회 대표적인 엘리트 집단이다. 대학도 ‘이과는 의대, 문과는 법대’라는 식이었다. 일부 의사들이 “변호사는 1000명씩 늘였는데 왜 의사는 2000명씩 늘이나”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사 판사 변호사들이 여전히 잘 나가지만 로스쿨 등 사회 변화를 거치면서 법조계는 많이 ‘평준화’된 분위기다.

반면 의사들은 지난 30여년간 ‘의사 숫자 동결’을 통해 ‘과독점’을 누려왔다. 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의대 과외반이 생기고 성적우수자들이 전국 의대를 간 다음 다른 대학에 가는 편향이 발생하고 있다.

의료공백 피해자는 결국 국민

물론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만 강조할 수는 없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만큼 상응한 지위와 대가를 보장해야 한다. 반대로 그에 대한 막중한 책임도 져야한다. 흰 가운을 벗어던지고 신음하는 환자를 내팽개치는 행태를 반복해선 곤란하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의협에서 징계를 받을 처지인 김 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료계가 파업에 나서면 단기적으로 환자의 피해가 발생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의사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의료계는 지난 1년여간 수십차례 정원확대 관련 협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양측이 요식적인 협의를 했다는 게 드러났다. 이제라도 정부와 의료계는 자존심을 뒤로 하고 열린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누구 한편이 항복해야 하는 ‘전쟁’이 아니다.

정부도 ‘2000명’이라는 숫자를 양보하면 마치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오만’이다. 정부가 바뀌어도 보건의료정책 전문가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조건 400명은 오답이고 2000명은 정답인 것은 아닐 것이다. 의료공백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의사도 검사도 아닌 국민이다.

차염진 기획특집팀장

차염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