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필 대법관 후보자 “사형제 폐지 고려할 만”
“범죄 억지력 입증된 바 없어”
재판지연 해소책 ‘법관 증원’
윤석열 대통령과 연수원 동기
정부가 살인 등 흉악범죄에 대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도입 법안을 발의한 가운데 엄상필(사법연수원 23기·사진) 대법관 후보자가 “대체수단 도입과 함께 사형제도 폐지를 고려할 만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엄상필 후보자는 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서면답변에서 ‘사형제 존폐에 대한 입장’에 대해 “사형제는 그 제도의 범죄 억지력이 입증된 바가 없으나 한번 집행되면 그 결과를 돌이킬 수 없고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사형제도가 악용된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엄 후보자는 “다만 이는 사형제가 위헌인지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이고, 사형제가 존재하고 합헌으로 선언되고 있는 한 최후수단으로 사형 선고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사형제 폐지 여부는 해외의 사례나 합리성, 타당성만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사형제에 관한 국민들의 법감정과 의견의 충분한 수렴을 거친 후 결정하여야 할 것”이라며 “국회에서 이런 점들을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엄 후보자는 또 사형제 대안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종래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논의는 사형제의 대안으로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며 “그런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 자체에 대해서도 위헌성 논란이 적지 않은 점, 유럽 등 해외 입법례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역시 폐지되는 추세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사형제와 병행하여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도입의 장·단점에 대한 더욱 면밀하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정부안으로 발의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도입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청문회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안은 무기형을 가석방이 허용되는 무기형과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으로 구분하도록 하고, 법원에서 형사재판 피고인에게 무기형을 선고하는 경우 가석방이 허용되는지 여부를 함께 선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사형제 폐지와 무관한 정부안은 조희대 대법원장과 엄 후보자가 사형제 대체수단의 하나인 ‘가석방 없는 무기형’과는 전제가 다르다.
조 대법원장이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과 관련해 “저도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한다면 사형제를 대체하는 쪽으로 하는 게 옳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재판 지연 해소 방안으로 법관 증원도 청문회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엄 후보자는 재판 지연 해소 방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판의 충실성과 신속성을 동시에 제고하기 위해선 법관의 증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현 인력 상황을 고려한 해결방안으로는 △기존 소송법 조항을 최대한 활용한 집중심리 △소송지휘 효율화 노력 △법원장의 사건 담당 △1심 단독관할 확대 △전문법원 신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본안 재판 전 사실 확인 및 증거조사 절차) 도입 등을 제시했다.
엄 후보자는 “법원의 노력뿐 아니라 당사자, 대리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므로 이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엄 후보자가 윤석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점도 야당 청문위원들의 주요 공략 대상이 될 전망이다. 엄 후보자는 윤 대통령과 같은 사법연수원 23기이자 서울대 법대 8년 후배이다.
엄 후보자는 ‘최근 10년간 윤석열 대통령과 사적 만남 여부 및 그 사유’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질의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무렵 서초동 근무 법원, 검찰 동기 모임에서 1회 정도 만난 기억이 있다”고 답했다.
자신이 안철상 전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 제청되는 데 대통령과의 친분이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을 부인한 것이다.
엄 후보자는 진주동명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1997년 서울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2021년부터 서울고법에서 재직 중인 그는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자녀 입시비리·사모펀드 관련 등 혐의 항소심 재판장을 맡기도 했다.
한편 신숙희·엄상필 대법관 후보자는 각각 41억800만원과 15억200만원 재산을 신고했다.
신 후보자는 본인과 배우자 공동명의로 서울 서초구 아파트(26억4400만원)를 신고했다. 예금은 1억700만원이었다. 신 후보자 배우자의 부동산은 전북 무주군 땅 2필지(총 700만원)와 서울 서초구 다가구주택(3억1700만원) 등이었다. 신 후보자 장녀는 2억3400만원 예금과 154만원어치 가상자산(이더리움·솔라나)을 적어냈다.
엄 후보자는 재산 목록으로 본인 명의의 서울 서초구 아파트(15억2900만원)와 예금 1억1900만원을 신고하고, 금융 채무 2억5600만원 등이 있다고 밝혔다.
김선일·구본홍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