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학장들 ‘수요조사서 수용능력 부풀리기’ 시인
“의대증원 350명 적절”… 정부 소통부재 비판
이주호 교육장관 '고심하는 총장' 간담회 소집
의대 학장들이 현재 각 대학이 수용할 수 있는 의대 증원 규모는 350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정부가 실시한 수요조사 당시 관행에 따라 실제 능력보다 ‘무리하게 수용 가능 인원’을 제출했다고 시인하고 정부의 2000명 증원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책 강행을 천명한 상황에서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는 27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 플레이스 센트럴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의대 증원 등 의료계 현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전국에서 25개 의대 학장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가량 진행됐다.
◆“실제 교육여건 대비 과도” = 신찬수 KAMC 이사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회의 후 “현재 40개 의과대학이 수용 가능한 인원이 350명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면서 “대학 본부에 다시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KAMC는 이날 의대들이 지난해 정부가 실시한 수요조사에서 희망 증원 규모를 ‘무리하게’ 제출했다고 시인했다. 지난해 교육부 주관의 수요조사 당시 각 대학의 실제 교육여건에 비춰 수용가능 인원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수도권 의대 교수는 “그동안 교육부 등은 정원 증원 과정에서 대학의 희망수요를 받고 검증을 거쳐 대폭 줄여 배정해왔다”면서 “이런 이유로 대학들이 정상적인 교육능력 이상을 적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대학은 현재 정원의 몇배를 배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면서 “당사자들은 물론 보건·교육당국도 이들 대학의 교육역량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KAMC는 각 대학 총장들에게 신청 기한 연장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 둔 상태다.
신 이사장은 “답변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면서 “총장들도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나가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착잡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상당수 의대가 기한 내에 증원 규모를 제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대학본부가 지난해 수요조사 자료를 참조해 신청할 수 있어 대학 내 갈등도 예상된다. 실제로 벌써부터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증원 규모를 두고 본부와 의대 간 내홍을 겪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학생 모집이 용이하고 학교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 의대 정원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대학본부와 교육의 질을 내세운 의대 학장들이 맞서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국책사업 등을 통해 예산지원 등을 받아야 하는 대학본부 입장에서 정부 방침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4월까지 배분 마칠 것” = 교육부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안전장치를 만들어 놨다. 교육부는 각 대학에 수요조사 공문을 보내면서 지난해 말 실시했던 기존 수요조사와 다른 정원 규모를 제출할 경우 사유를 명시하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교육계에서는 지난해 수요조사에서 제출한 증원 희망 규모를 가급적 지켜달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가운데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과대학을 운영 중인 40개 대학 총장들을 28일 소집해 눈길을 끈다. 교육부 안팎에서는 간담회에서 이 부총리가 의대 증원 신청기한을 준수해달라고 재차 주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이날 간담회가 KAMC에서 지난 26일 교육부에 보낸 ‘의대 정원 신청기한을 연기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신청 기한을 더는 미뤄줄 수 없다며 KAMC 요청을 거절했다. 내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에서 늘어난 의대 정원을 반영하려면 늦어도 4월까지 배정을 마쳐야 한다는 게 교육부 입장이다.
박성민 교육부 대변인 겸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26일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연기 요청) 의견이 들어오더라도 정부 차원에선 정원 2000명 증원이나 3월 4일까지 (정한) 정원 신청 기한에 대해서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와 소통 끊어져” = 또한 신 이사장은 “각 학교 학장님이 학생들이랑 소통하고 있지만, 정부와 소통이 끊어졌다”며 “중재를 하려면 문이 열려야 하는데 아직은 문이 닫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휴학한) 학생들이 유급당하지 않도록 최장 3월 16일까지 개강일을 늦춰주는 것 정도”라고 덧붙였다.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은 전날 기준 1만3000명을 넘어섰다. 이는 전국 의대 재학생의 70.2% 수준이다.
교육부는 대학에 학생들이 단체로 낸 휴학계를 철회하거나 반려해 수업 현장에 복귀하도록 설득할 것을 요청해왔다. 다만, 수업에 불참하는 경우 학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