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반대” 의사 4만명 거리로…정부는 강경대응 기조

2024-03-04 13:00:27 게재

의협 “전공의들, 정부 억압에 항거” … 경찰, 의협 간부 4명 출국금지

3일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 등 약 4만명(주최측 추산)이 서울 도심 집회를 열고 ‘의대 증원 2000명’을 원점에서 검토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 상황이 와도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대응 기조를 밝혔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연단에 선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는 의사가 절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을 ‘의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비판하며 “이에 사명감으로 자기 소명을 다해온 전공의가 스스로 미래를 포기하며 의료 현장을 떠났다”고 밝혔다.

정부 규탄 구호 외치는 의사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주최 전국의사총궐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정부 조건 없는 대화 나서야” = 김 위원장은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이탈에 대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태워 공양한 ‘등신불’처럼 정부가 의료 체계에 덧씌운 억압의 굴레에 항거하고 ‘의료 노예’ 삶이 아닌 진정한 의료 주체로 살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가 전공의를 초법적인 명령으로 압박하고, 회유를 통해 비대위와 갈라 치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대화를 말하면서 정원 조정은 불가하다는 정부의 이중성 그리고 28차례 정책 협의 사실을 주장하다 느닷없이 (의협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정부는 말 그대로 의사를 우롱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정부는 전공의와 의대생을 비롯한 모든 의사가 한목소리로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서 “(정부가) 정책과 제도를 악용해 의사를 영원한 의료 노예로 만들기 위해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또 “정부의 무모한 정책 추진이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며 “정부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를 포함한 비대위와 (2000명 증원을 포함해)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정부의 본심은 실질적 의료 개혁이 아니라 눈앞의 총선을 위한 것”이라며 “처우를 개선하고 소송 위험성을 줄여주면 전문의 수천 명이 자신의 (필수의료) 전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참석자 중에는 가족 단위 참석자도 적지 않았다.

안덕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정부가 의사들을 명령으로 통제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안 교수는 “명령과 통제의 의료정책 기조는 일제 식민통치의 전통에서 시작했다”며 “국가 정책은 합리적인 논리와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명령과 통제로 압박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협 비대위는 이날 집회 참석자를 4만명으로 추산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학부모들이 많이 왔다”고 전했다.

이날 의협 비대위는 △의대 정원 증원 원점 재논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졸속 추진 즉각 중단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 즉각 중단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정부의 졸속 의대정원 증원 추진과 불합리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교육여건과 시설기반에 대한 선제적 준비와 투자가 없는 상황에서 급진적으로 의사를 2000명 증원한다면 의료비, 건강보험료 등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증원 발표 일방적이었다” = 집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공원 일대는 집회 시작 1시간 전부터 붐볐다. 집회장소 인근 차로에는 지역 의사들이 타고 이동한 버스 수십여대가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참가자도 많이 눈에 띄었고 의사와 부모가 함께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영등포역 방향 5개 차로를 메운 의사와 의대생 등은 ‘준비 안 된 의대증원 의학교육 훼손된다’ 등의 손팻말을 든 채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깃발을 앞세우며 조직적으로 참가했는데 군데군데 의대생들도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학생회 등의 깃발이 없었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집회에 참석한 의사와 전공의, 의대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가 일방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가정의학과 의사로 아들도 의사라고 밝힌 나 모씨는 “기반도 만들지 않고 갑자기 의대 정원 2000명을 증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인문학 교수도 갑자기 2000명을 늘리면 교육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만 아는 국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며 “정치는 절충인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명령으로만 해결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남에서 올라온 20년차 정형외과 의사 김 모씨는 “의대 증원도 적정 규모, 교육할 수 있는 사람, 재원 확보 여건을 보면서 늘려야 하는 데 그런 게 전혀 없다”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의사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좀 들어보고 의대 인원을 합의해서 증원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과대학 본과 3학년이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업무개시 명령 보다는 학생으로서 정책에 반대해 참여하게 됐다”며 “애초에 협의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2000명 증원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경기도에서 비뇨기과를 운영한다는 한 의사는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필수 의료”라면서 “필수 의료를 관두고 다른 과로 간 의사들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갑자기 2000명을 더 뽑으면 인재들이 다 의대로 몰려 공대, 반도체, AI산업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 대표들을 만나 협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거부하는 의사들도 있었다. 한 의사는 “인터뷰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회가 열리기 전 의사들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 등에서는 △기자들이 녹음기를 켜 놓고 녹취해 악마의 편집을 한다. 지인들과 대화를 조심하라 △개인적으로 인터뷰 하지 말라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들과 근처 카페에서 만나지 말라 등 언론과 접촉을 피하라는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정부 ‘강공 모드’ 이어가 = 이런 가운데 정부도 ‘강공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등 돌리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전공의들이) 불법적으로 의료 현장을 비우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정부 의무를 망설임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대부분은 연휴가 끝나는 3일까지 대부분 복귀하지 않았고,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4일부터 면허정지 및 고발 절차를 진행한다.

경찰은 의협 현직 간부 4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했다.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4명은 지난 1일 압수수색 대상 5명 중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을 제외한 현직 간부들이다. 지난 1일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가 압수수색한 대상은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강원도의사회장),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박명하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서울시의사회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노 전 회장 등 의협 전·현직 간부 5명이다.

●제약사 영업사원 동원 논란 = 한편 경찰은 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부 의사들이 제약회사 영업사원 등을 대상으로 집회 참석을 강요한다는 글이 여럿 올라온 것과 관련해서도 사실 확인에 착수했다. 대통령실도 이와 관련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해당 게시물들에는 ‘의사 총궐기에 제약회사 영업맨 필참이라고 해서 내일 파업 참여할 듯’ ‘거래처 의사가 내일 안 나오면 약 바꾸겠다고 협박해서 강제 동원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혔다. 경찰청은 업무상 ‘을’의 위치인 제약회사 직원들에게 ‘갑’인 의사들이 부당하게 집회 참여를 요구한다면 형법상 강요죄와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협은 의혹을 부인했다. 주수호 의협 비상위 언론홍보위원장은 “비대위나 16개 시도의사회, 시군구 의사회 등 지역단체에서 제약회사 직원을 동원하라고 요구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면서도 “일반 회원들의 일탈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강요된 것인지 아니면 제약회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온 것인지에 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장세풍·박광철·오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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