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말고 이력서부터 가져와라”
무연고 후보에 민심 싸늘
물밑선 ‘수성·탈환’ 꿈틀
변수 ‘바람과 조직’예상
서울 중성동갑
국민의힘 윤희숙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가 맞붙는 중구성동갑은 이번 총선 승부를 가를 서울 한강벨트 핵심 선거구 가운데 하나다. 양당 모두 지역에 연고가 없는 후보를 단수공천 했다. 주요 승부처답게 서로 중량감 있는 후보를 내세웠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민심은 아직 싸늘했다.
10일 두 후보의 선거 사무소가 위치한 상왕십리역 인근에서 만난 김모(67)씨는 “온 지 한달도 안된 후보들이 동네를 얼마나 안다고 공약을 꺼내겠나. 공약보다 그동안 후보들이 국민을 위해 뭘 했는지 이력서부터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컷오프 등 시끄러웠던 공천 과정과 달리 현장 분위기는 아직 달아 오르지 않고 있다. 젊은층이 밀집한 한양대 인근에서 만난 박모(27)씨와 윤모(26)씨는 이구동성으로 “누가 출마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양당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인 만큼 물밑 싸움은 이미 치열하다. 윤희숙 후보측은 강점인 ‘경제 전문가’를 간판으로 내걸고 민주당의 12년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는 기세다.
당초 국민의힘은 중구성동갑에서 ‘경제 전문가 vs 86운동권’ 구도를 노렸지만 임 전 실장이 빠지면서 운동권 심판론은 작동하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 타이틀이 부촌으로 성장한 성동 주민 눈높이에 부합한다는 판단 아래 해당 슬로건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맞선 전현희 후보는 ‘민생·민원 전문가’를 내걸었다. 전 후보는 비례대표에 이어 지난 20대 총선 강남을에서 재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주당 불모지인 강남에서 승리하며 입증한 후보 경쟁력과 전통적 우세지역임을 내세워 승리를 장담한다.
중구성동갑은 이름에 중구가 들어있지만 실제는 성동구만으로 구성돼 있는 지역구다. 역대 총선과 지방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꼽을만 하지만 최근 대선과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후보가 앞서는 등 표심의 변동성이 과거에 비해 커졌다.
변수는 바람과 조직이다. 정권심판론이 작동되던 역대 총선과 달리 이번에는 특정 방향으로 바람이 불지 않고 있다. 더구나 양당 후보는 모두 지역에 연고가 없는 이른바 ‘낙하산’ 공천으로 뽑혔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을 감안할 때 인물보다 정당 지지율이 당락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전역을 휩쓴 오세훈 바람에도 구청장 자리를 지킨 정원오 구청장의 영향력도 변수로 꼽힌다. 지난 2022년 성동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정원오 구청장은 57.6%를 얻어 국민의힘 후보를 15.2%나 앞섰다.
왕십리에서 약국을 하는 최모(41)씨는 “의사파업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정부를 응원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 의대정원이 늘어난다면 총선 표심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두집을 운영하는 김모(62)씨는 “국민의힘 지지자이지만 구청장은 정원오를 찍었던 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계속 민주당 후보를 찍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정치권의 선거 전략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권자 의식이 높아지면서 지역 일꾼론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행당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민모(53)씨는 “야당 저격수, 정권과 맞서 싸울 여전사 등 이른바 ‘투사’ 이미지는 주민들에게 통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용어”라며 “두 후보 모두 지역에 특별한 연고가 없고 정당 지지세도 쏠림이 없는 만큼 누가 더 민생을 중심으로 바닥을 공략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엄경용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