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어선원 사망·실종, 민생토론·연안어촌토론서 소외
어선 전복·침몰·화재, 대통령·해수부장관 우선 관심사에 안 보여
4월은 세월호참사 10주년 … 해수부, 15일부터 어선안전조업 지도
최근까지 스무 차례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에서도, 남해권과 동해권에서 잇따라 열린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의 연안·어촌토크콘서트(연어톡)에도 침체하고 있는 어선어업에 대한 진단과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그 사이 거친 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들은 뒤집어지고 가라앉고 불탔다.
해양수산부는 닷새 사이 통영 앞바다에서만 어선 전복과 침몰로 7명이 죽고 6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난 이후 봄철 어선사고 예방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어업·어촌 절박한 문제 외면한 대통령·해수부장관 = 14일 전남 무안군에 위치한 전남도청에서는 ‘미래산업과 문화로 힘차게 도약하는 전남’을 주제로 20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가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토론회가 호남에서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대통령실과 해수부는 호남의 미래산업에 △광양항 항만자동화 △광양항 배후단지 산업·물류용지로 조성 △김 산업 육성 △서남해안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 및 불법어구 수거 등을 포함해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도 어업현장에서 절실한 안전한 조업과 어선사고에 대한 진단·예방대책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통령의 민생토론에서 해수부 관련 사안이 포함된 것은 무안까지 세 차례였지만 어촌과 수산업계에서 중요 사안인 어선어업의 실태에 대한 진단과 발전방안을 토론한 경우는 없었다.
해수부 장관이 주재하고 있는 연안·어촌토크콘서트에서도 어선어업은 중요 주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해수부는 어촌·연안의 성장잠재력이 크지만 지속적인 어가인구 감소, 고령화 심화 등으로 소멸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하고 민생개혁 1호과제로 ‘어촌·연안 활력 제고를 위한 종합계획’을 중점 수립해 나가고 있다.
정주여건 개선, 양질의 일자리와 안정적인 소득원 창출, 해양관광 활성화 등을 위해 수산업과 가공·유통, 해양레저·관광, 연안개발에 이르기까지 어촌·연안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을 담을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경남 통영(남해안권)에서 열린 1차 ‘연어톡’은 귀어·귀촌을 중심으로, 이달 13일 강원도 양양(동해안권)에서 열린 2차 연어톡은 해양레저·관광 등을 중심으로 중심으로 현장 간담회가 진행됐다.
동해안권 연안·어촌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동해안 어촌을 황폐하게 했던 ‘사라진 오징어’와 ‘조업 침체’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은 빠져서는 안될 사안이지만 우선 순위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사고 대응·원인분석도 부실 = 양양에서 열린 연안·어촌토크콘서트(13일)와 무안에서 열린 민생토론회(14일) 사이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는 11명이 타고 있던 어선이 침몰해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해양경찰청과 해수부에 따르면 14일 오전 4시 12분 즈음 통영시 욕지도 남쪽 약 8.5㎞ 해상에서 대형 쌍끌이 저인망어선 2척 중 1척(139톤급. 부산 선적)이 침수 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강도형 해수부 장관도 오전 4시 15분경 사고 관련 보고를 받고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인명구조와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해경 등과 협조해 인명피해 최소화에 만전을 다해 달라”고 즉시 지시했지만 한국인 선원 3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돼 사망했다. 선원 11명 중 7명(인도네시아 6, 베트남 1명)은 구조됐고, 1명(한국인)은 실종됐다.
이날 사고는 지난 9일 통영 욕지도 남쪽 68㎞ 바다에서 옥돔을 잡던 근해연승어선(20톤급. 제주 선적)이 전복된 사고로 실종된 선원 5명(한국인 1, 인도네시아인 4명)을 찾지도 못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9일 사고로 한국인 선장 1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은 사망했다.
9일 사고는 사고 원인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선박의 항적이 끊긴 시점과 사고신고를 접수한 시간도 10시간 가까이 차이가 나 사고상황을 바로 파악하지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영 앞바다뿐 아니다. 14일 오전 부산 기장군 대변항 동쪽 3.5㎞ 해상에서 1.6톤급 1인용 어선이 침몰해 배에 타고 있던 70대 선원이 숨졌다. 12일엔 전남 여수시 남면 작도 동쪽 13㎞ 해상에서 7톤급 통발어선이 전복돼 선장 1명이 숨지고 6명이 구조됐다. 1일에는 제주도 서귀포시 마라도 인근 해상에서 33톤급 어선이 전복돼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지난달 15일에는 전남 해남 송지면 인근 해상에서 6톤급 전복 양식장 관리선이 뒤집혀 선장 1명과 선원 2명이 숨졌다. 해경은 전복 채취를 마치고 입항하던 선박이 기상악화로 높은 파도를 만나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산 기장 앞바다 사고처럼 1인용 어선에서 사망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경주 감포 앞바다에서 4톤 어선을 몰고 혼자 조업에 나섰던 70대 선장이 바다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선박화재·좌초 등 크고 작은 사고도 계속되고 있다. 14일 오전 전북 부안군 위도 인근 해상을 지나던 24톤급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배에 있던 선원 3명은 다른 어선에 의해 모두 구조됐다. 13일에도 군산시 중동 인근 선착장에 정박 중이던 6톤급 어선에 불이 나 소방당국이 20분만에 진화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12일엔 통영 앞바다에서 3톤급 연안통발 어선이 침몰, 선장이 바다에 빠졌지만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군에서 구조했다. 8일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인근 해상에서 어선이 전복됐지만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에서 선원 2명을 모두 구했다.
1월 13일, 전남 신안군 만재도 해상에서 조향장치가 고장난 9.7톤급 낚시어선이 암석에 부딪혔지만 승선원 10명은 모두 구조됐다. 조타기 고장으로 암석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통계적 확률로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작은 사고들이 잇따르면서 경고한다는 가설이 있다”며 “잇따른 어선사고에 대해 경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연안에 어족자원이 감소하고, 기후변화에 따라 어종 서식지가 변하면서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조업을 나가게 되고, 이상기후도 자주 발생해 사고 위험은 커지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사고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한데 모호한 경우도 많다”며 “어선이 낡고, 선원은 고령화돼 현장에서 사고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고, 사고 후 신고도 원활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해양사고 66%는 어선사고 … 1년 전보다 증가 = 해수부는 15일부터 20일까지 연근해 어업인 업·단체와 수협 어선안전조업국에 봄철 안전사고 경각심을 높이고, 안전조업을 지도한다. 연근해 어선을 대상으로 구명장비 비치 여부, 승선정원 준수, 어구 등 물품과적 금지, 전열기 등 화재예방과 함께 통신장비 점검, 조어안전규정 준수 등도 살피기로 했다. 낚시어선을 대상으로 구명조끼 등 안전설비 상태, 출항전 안전점검, 승객 비상대응요령 안내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해수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14일 지난해 해양사고 발생 및 인명피해 현황 등을 담은 ‘2023년 해양사고 통계’를 공표했다.
지난해 해양사고는 3092건이 발생, 1년 전 2863건에 비해 8.0% 증가했다. 사망·실종 등 인명피해는 94명으로 5명(5.1%) 줄었다. 전체 해양사고 중 어선 사고는 2047건(66.2%)으로 가장 많았다. 수상레저기구 사고가 555건(17.9%)으로 뒤를 이었다. 어선사고는 329건(19.2%)이 증가했고, 수상레저기구는 47건(7.8%) 줄었다.
강용석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은 “매년 약 3000건의 해양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경각심을 가지고 현장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