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국경제 성장 좌우할 중소기업 활력
한국경제의 장기 저성장 우려가 커지면서 중소기업 활력 제고와 창업 활성화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수의 99%와 고용의 82%를 담당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여전히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커가는 성장사다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키우는 성장플랫폼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유행 전인 2019년 2.2%라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5번째로 낮은 수치였다. 코로나19를 벗어난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였고 올해 2.1%가 예상된다(한국은행 전망치). 2%대 초반의 저성장이 상시화되고 있는 셈이다.
기업 혁신율·창업기업 생존율 모두 뒤처져
세계적 경기침체, 가치사슬과 공급망 붕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기술패권전쟁 등 저성장의 요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업 혁신성이다. 신생기업과 혁신기업이 나오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혁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가운데 30위다. 지난해 가장 혁신적인 기업 50위권에 든 한국기업은 삼성전자뿐이었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의 국가별 기업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1990년 11개에서 2022년 18개로 7개가 늘었다. 미국이 167개에서 136개로, 일본이 111개에서 41개로, 영국은 43개에서 15개로 각각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 하지만 중국이 같은 기간 1개에서 135개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우리는 정체상태로 봐야 한다. 게다가 기업의 순위는 갈수록 뒤로 처지고 있다. 200위 안에는 4개 기업뿐이고 나머지 기업은 200위권 밖에 위치한다.
지난달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주재한 ‘중소기업 성장사다리 구축방안’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중소기업이 성장(중견·대기업) 자체를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있다고 인식했다. 창업기업 생존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한국 1년차 창업기업 생존율은 64.8%다. OECD 평균 82.2%에 훨씬 못 미친다. 5년차의 경우 한국은 33.8%, OECD 평균은 45.4%였다. 이처럼 생존율이 떨어지다 보니 새로 창업하는 신생기업수가 최근 2년 연속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신생기업은 99만7000개(2022년)로 전년대비 3만6000개가 감소했다.
독일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최강자로 자리한 중소기업, 즉 ‘히든 챔피언’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기업을 육성해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전략이다. 조병선 전 중견기업연구원장은 독일에서 강소기업이 번성한 이유로 기술축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관행, 법제도 차이 등을 꼽았다. 특히 하청 중소기업과 원청 대기업이 서로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을 지속하고 기술을 공유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생산원가를 절감할 경우 이를 하청업체 연구개발 투자에 사용할 수 있다. 서로 협력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독일 중소기업은 한두개 대기업에 납품을 의존하지 않는다.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서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771만곳 가운데 제조 중소기업은 62만곳이다. 정부가 이 가운데 8000개사를 샘플로 실태조사한 결과 86.8%가 다른 기업에 생산품을 납품하고 있었다. 제품을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곳은 9%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납품관계에 있는 셈이다. 그것도 대체로 한두개 기업에 전속으로 납품한다. 원가절감과 같은 혁신의 과실이 납품업체에 귀속되지 않는다. 혁신에 따른 납품단가 인하는 매출감소로 이어지곤 한다. 수요독점 상태이다 보니 혁신하려는 동인이 떨어진다.
성장사다리와 플랫폼 제대로 구축해야
헌법은 123조 3항에서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혁신을 강조하는 중소기업 전문가들은 보호받는 중소기업이라는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중소기업 지원사업 예산은 10년간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중소기업 혁신과 성장은 제자리걸음이다.
납품관계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건전한 생태계를 조성해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비 창업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신생기업수도 늘려야 한다. 한국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부 정책’이나 ‘대기업 중심 생태계’보다는 ‘중소기업의 역동성’을 선택한 국민이 가장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새길 필요가 있다.
범현주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