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술 생태계서 누가 얼마나 벌었나
챗GPT 출시 이후 8조달러 커져 … 이코노미스트 “엔비디아, MS 외에도 승자 많아”
이달 초 하드웨어 제조업체인 델의 주가가 하루 만에 30% 이상 급등했다. 인공지능(AI) 관련 매출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며칠 뒤 클라우드 컴퓨팅 스타트업 ‘투게더AI’는 12억6000만달러(약 1조70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아 1억600만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5억달러로 평가받은 바 있다. AI 대장주는 역시 엔비디아다. 장기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생성형AI인 챗GPT가 출시되기 전인 2022년 11월 이 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3000억 달러였다. 현재는 2조3000억달러에 달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AI 관련 뉴스 때문에 어떤 기업이 AI 붐의 진정한 승자인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어떤 기업이 승리할지 파악하기 어렵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AI 기술스택’을 통해 지금까지 어디에서 가치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제품 및 서비스의 예상 매출과 어떻게 합산되는지 살펴봤다. 또 계층과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을 조명했다.
AI 기술스택의 4가지 계층은 첫째 스택 외부의 회사들에게 AI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기업, 둘째 AI모델과 그 모델들이 모이는 플랫폼, 셋째 이러한 모델과 애플리케이션을 호스팅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아마존 웹서비스,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 MS 애저), 넷째 클라우드의 컴퓨팅 성능을 담당하는 반도체(AMD, 인텔, 엔비디아), 서버(델), 네트워킹장비(아리스타) 등 하드웨어다.
기술혁신은 새로운 기술 대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개인용컴퓨터(PC) 붐은 윈도우 운영체제를 만든 MS와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칩을 제조한 인텔을 기업순위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에 따르면 2000년대 ‘윈텔’(윈도우+인텔)은 PC업계 영업이익의 4/5를 차지했다. 스마트폰 시대의 애플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한 지 불과 수년 만에 전세계 스마트폰 제조업체들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세계는 아직 생성형AI 시대의 초기단계다. 그럼에도 이미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100여개 기업들은 챗GPT가 출시되기 직전인 2022년 10월 이후 8조달러의 가치를 창출했다.
스택의 모든 계층에서 소수의 선도기업에 가치가 집중되고 있다. 하드웨어 계층, AI모델 제작 계층, 애플리케이션 계층의 각각 상위 3개 기업들은 지난 1년반 동안 시장비중을 평균 14%p 늘렸다. 클라우드 계층에서는 챗GPT의 제조업체인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MS가 아마존과 구글을 앞질렀다. 3개 클라우드 트리오의 시가총액에서 MS 비중은 챗GPT 출시 전 41%에서 현재 46%로 늘어났다.
소수 선도기업들에 가치 집중
가치상승은 계층 간에도 고르지 않다. 절대적인 수치로 보면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가장 많은 부를 얻었다. 이 범주에는 칩 회사(엔비디아), 서버를 만드는 회사(델), 네트워킹장비를 만드는 회사(아리스타)가 포함된다. 챗GPT가 출시되기 전인 2022년 10월, 27개 주요 하드웨어 관련 상장기업 가치는 약 1조5000억달러였다. 현재는 5조달러다. 기술 붐이 일어나 소프트웨어가 제공되려면 먼저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모뎀과 같은 장비를 공급하는 시스코나 월드컴 같은 통신 대기업이 초기 승자였다.
지금까지 가장 우뚝 선 승자는 단연 엔비디아다. 하드웨어 기업 시가총액 증가분의 약 57%를 엔비디아가 가져갔다. 리서치기업 IDC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전세계 AI칩의 80% 이상을 생산한다. 또 데이터센터 AI서버 내부에 들어가는 칩을 연결하는 데 사용되는 네트워킹장비에서도 거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2023년 2월~2024년 1월 1년 동안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사업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총마진도 59%에서 74%로 증가했다.
엔비디아의 경쟁자들도 속속 참전하고 있다. AMD 인텔 등 기존 기업들도 경쟁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초고속AI 칩을 만드는 그로크(Groq)와 초대형칩을 만드는 세레브라스(Cerebras) 등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의 가장 큰 고객인 클라우드 대기업 3사도 모두 자체 칩을 설계하고 있다. 독점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편이다. AMD 최고경영자 리사 수는 AI칩 시장이 2023년 450억달러에서 2027년 4000억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엔비디아 혼자 소화하기엔 너무 큰 시장이다.
AI 애플리케이션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모델 훈련에 필요한 칩에서, 실제로 쿼리에 응답하는(추론) 데 필요한 칩으로 수요가 전환될 전망이다. 엔비디아의 지난해 AI 매출 중 약 2/5가 추론용칩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은 일부 추론기능이 엔비디아의 강점인 특수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AMD·인텔이 주도하는 범용 중앙처리장치(CPU)로 옮겨가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 머지않아 일부 모델 훈련도 GPU가 아닌 CPU에서 수행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수년 동안은 엔비디아의 하드웨어 시장지배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실적이 없는 스타트업들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클라우드 대기업들의 자체 칩 생산도 여전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엔비디아는 고객들이 원하는 맞춤형 칩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를 보유하고 있다.
절대적인 가치창출 경쟁에서 하드웨어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가장 큰 성장률을 누린 건 AI모델 제조사들이다. 11개 주요 기업의 총가치는 지난 16개월 동안 290억달러에서 약 1380억달러로 급증했다. 오픈AI는 2022년 10월 200억달러에서 현재 약 1000억달러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앤스로픽 기업가치는 2022년 4월 34억달러에서 현재 180억달러로 급증했다. 설립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프랑스 스타트업 미스트랄 가치는 현재 약 20억달러에 달한다.
오픈AI가 초기 주도권을 잡았지만, 도전자들도 따라잡고 있다. 앤스로픽의 클로드3이 GPT-4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GPT-4가 출시된 지 4개월 뒤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는 오픈AI, 앤스로픽의 독점형 모델과 달리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 강력한 개방형 모델 라마2를 출시했다.
지난달엔 직원수가 40명도 안되는 미스트랄은 학습과 실행에 훨씬 적은 컴퓨팅 파워를 쓰면서도 성능은 GPT-4와 거의 비슷한 개방형 모델을 출시해 업계를 놀래켰다.
특정 작업을 위해 설계된 제품도 있다. 한 스타트업은 재무 예측을 위한 모델인 ‘타임GPT’를 개발했다. 의대 입학시험 자료로 학습한 ‘히포크라테스AI’라는 모델은 정확한 의료적 조언을 제공한다. 벤처투자기업 세쿼이어의 스테파니 잔은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성능을 제공하는 소형모델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클라우드 3인방 신뢰
AI모델이 풍부해지면서 애플리케이션 계층 성장도 가능해졌다. 애플리케이션 그룹에 속한 19개 상장 소프트웨어 기업의 가치는 2022년 10월 이후 1조1000억달러(35%)가 늘었다. 여기에는 서비스에 생성형AI를 추가하고 있는 대형 소프트웨어 제공업체도 포함된다. 줌(Zoom)은 이 기술을 사용해 화상통화를 요약할 수 있게 한다. 기업에 기술, 인적자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나우’는 챗봇을 도입해 고객의 IT 관련 문의를 해결하고 있다. 포토샵 제작사인 어도비는 AI를 사용해 사진을 편집하는 파이어플라이라는 앱을 출시했다.
그리고 클라우드 계층이 있다. AI 붐이 시작된 이후 알파벳과 아마존 MS의 시가총액은 2조5000억 달러 증가했다. 하드웨어 계층의 시가총액 증가에 비하면 3/4에 불과했다. 하지만 AI가 빅테크 3인방에 가져다 줄 실제 수익과의 비율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해 생성형AI가 클라우드 대기업들 매출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액수는 약 200억달러다. 이에 비해 시가총액 증가분(2조5000억달러)은 그보다 120배 많았다. 하드웨어 계층의 이 비율은 약 40배, AI모델 계층의 비율은 30배 정도였다.
미래 예상수익의 또 다른 척도인 주가수익률(PER)도 비슷한 맥락이다. 빅3 클라우드 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률은 2023년 초 21에서 현재 29로 상승했다. 이는 S&P500 지수에 포함된 비기술 일반기업들보다 50% 이상 높은 수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는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가장 큰 승자를 클라우드 대기업으로 본다는 의미”라며 “기술 대기업들은 데이터와 연구진, 데이터센터, 현금 등 AI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칩부터 애플리케이션까지 기술스택의 모든 계층을 제어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