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집단 사직’ 시작됐다
“증원 백지화 안하면 철회 없다” … 의대생 2명 중 1명 유효 휴학계 제출
의대 교수들이 당초 밝혔던 대로 25일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다만, 교수들이 사직서가 수리될 때까지는 진료하겠다고 밝힌 상태라 당장 의료 현장에 대혼란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등 교수 단체들에 따르면 이날 고려대를 시작으로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시작됐다.
◆고대 교수들 사직서 제출 = 25일 고려대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총회를 열고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고대의대 교수 비대위원회가 주도하는 가운데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의 전임·임상교수들은 이날 오전 7시 30분 안암병원 메디힐홀·구로병원 새롬교육관·안산병원 로제타홀에서 각각 모여 온라인 총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에 “전공의와 의대생에 대한 비방과 위협을 즉시 멈출 것”과 “잘못된 의료 정책과 정원 확대 추진을 철회하고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교육 여건이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독단적인 2000명 증원 배정을 멈추고, 학생 교육의 주체이자 당사자인 교수들의 의견을 청취하라”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대국민 성명서’에서 “의료서비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 상황에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집단적 영달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바로잡고자 교수들에게 환자를 잠시 부탁한 것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의사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잘못된 정책에 손상되지 않도록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총회 참석자들은 미리 작성했거나 이날 현장에 준비된 양식에 서명한 사직서를 강당에 있는 수거함에 줄지어 넣고 퇴장했다.
이날 총회는 고대 의대 학생들도 참관했다. 학생들은 정부를 향한 요구사항을 함께 제창하기도 했다.
고대를 시작으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에 동참할 전망이다. 19개 의대가 모인 비대위는 이날부터 학교별 절차에 따라 사직서를 내기로 결의했다.
전의교협도 25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입학정원과 배정은 협의, 논의의 대상도 아니며 대화하지도 않았다”면서 “정부에 의한 입학정원과 정원배정의 철회가 없는 한 이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전의교협은 “정부의 철회 의사가 있다면 국민들 앞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이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의료대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 앞서 24일 ‘의정 대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일부에서 사직서 제출 등이 유보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전의교협 회장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요청을 받아들여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당부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의료계 인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정부가 지난 20일 기존보다 총 2000명 늘어난 의대별 입학정원을 공식 발표하면서 27년 만의 의대 증원에 쐐기를 박은 만큼, ‘2000명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의지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의료계에서는 교수들의 사직과 주52시간 근무, 중환자 및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외래진료 축소 등이 진행돼도 당장 의료대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수리되기 전까지 진료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고, 대학들도 당장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효 휴학 9109건 = 이런 가운데 학생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24일 교육부에 따르면 22~23일 이틀간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개교에서 415명이 ‘유효 휴학’을 신청했다. 유효 휴학 신청은 학부모 동의, 학과장 서명 등 학칙에 따른 절차를 지켜 제출된 휴학계다. 의대생들의 수업거부가 진행되는 학교도 8곳이다.
현재 유효 휴학 신청 건수는 9109건으로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의대 재학생(1만8793명)의 48.5% 수준에 달한다.
교육부는 지난달까지 학칙에 따른 절차 준수 여부와 상관없이 학생들이 낸 휴학계 규모를 모두 집계했다. 지난달 말까지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은 총 1만3697명(중복 포함)이었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유효 휴학 신청만을 집계하고 있다.
교육부가 이달 20일 ‘2000명 증원분’에 대한 대학별 배분 결과를 발표하면서 의료계와 정부의 대치 상황이 더 심화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동맹휴학 등 의대생들의 집단행동도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형식 요건을 갖췄더라도 “동맹휴학은 휴학 사유가 아니어서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부분 의대 학칙상 수업일수의 1/3 또는 1/4 이상 결석하면 F 학점을 주는데,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으면 유급 처리된다.
대학가에서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2월이었던 본과생들의 개강을 이달 말까지 연기하거나, 개강 직후부터 휴강을 이어가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