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대화 제안에 의료계 ‘진정성’ 의심
“‘무조건 만나자’ 방식 곤란 … ‘증원 원점 검토’부터" 요구
의대 2000명 증원 철회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잇달아 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의료계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증원 원점 검토’ 등 전제 조건을 요구하고 있어 만남이 현실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4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잇단 대화 제안에 의사단체 등 의료계는 원론적으로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다만 전공의들이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의대증원 원점 재논의, 미복귀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 취소 등의 의지를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잇단 대화 제의에 전공의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의료계 현장에서는 전공의들이 섣불리 대통령과 대화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전공의들이 주장해온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백지화'부터 정부가 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수련병원 교수는 “전공의들과 대화하려면 그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일단 유예하고 대화를 하자고 제안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대통령 스스로 퇴로를 다 차단해 놓고 대화를 하자는 것인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3일 ‘대통령과 전공의 만남에 대한 제언’이라는 내용의 자료를 내고 “대통령실에서 대통령과 전공의와 대화를 제안한 것에 원칙적으로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무조건 만나자고 한다면 대화 제의의 진정성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의료계와 협의해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겠다는 조건을 먼저 제안해달라”고 강조했다.
◆전국 병원에 인턴 131명뿐 =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사이에 의료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올해 인턴 임용 등록 대상 2068명 중 131명이 등록을 완료했다. 매년 인턴 등록 경쟁이 벌어졌던 서울대병원마저 정원 166명 중 6명만이 인턴 등록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선 낮은 인턴 등록률이 앞으로 수년간 의료체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복지부도 인턴 등록률이 10% 내외를 기록한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으나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수도권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이 상황은 해당연도의 전공의 전문의가 없어진 것”이라며 “이들이 군대갈때 공보의와 군의관 수급이 불가능해지고 수련병원의 전공의 인력은 약1/3로 줄어 수년간 전공의 부족이 지속돼 상급종합병원의 진료기능 약화와 경영악화가 지속되고 구조조정 등 노사 갈등과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불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대통령과 전공의 간 대화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상황에도 의대 교수들의 사직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수들, 근로감독 강화 요구 =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진료 단축도 이어지고 있다.
강원대병원 교수들은 이날까지 내과 의국에 마련된 함에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낼 예정이다. 단국대병원에서는 전임 교수의 약 60%인 80여명의 교수가 사직서를 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고용노동부에 ‘전공의 수련병원 근로 감독 강화 요청의 건’에 관한 공문을 발송했다.
전의교협은 공문에서 “과로로 내몰리고 있는 교수들의 장시간 근무, 36시간 연속 근무 등 위반 사항에 대한 근로 감독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련병원 교수들의 주 52시간 근무와 개인 병의원의 주 40시간 근무 등 진료 축소는 이날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패소 = 한편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4부(김정중 부장판사)는 3일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 18명이 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에 대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앞서 같은 법원 행정11부(김준영 부장판사)가 전날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 대표들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한 것과 유사한 취지다.
이로써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제기된 집행정지 신청 6건 중 2건은 법원의 각하 판단을 받았고, 1건은 스스로 취하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