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자초한 윤 대통령, ‘만시지탄’ 협치? ‘하던 대로’ 독주?
국정동력 상실 위기 … 3대 개혁 국회협조, 의대증원 ‘가시밭’
국정쇄신. 대야·당정관계 재정립 숙제 … ‘마이웨이’ 우려도
‘일방소통 리더십에 회초리’ 평가 지배적 … “대국민사과부터”
4.10 총선 참패에 직면한 윤석열 대통령이 말 그대로 ‘식물 대통령’이 될 위기에 처했다. 임기 초부터 드러난 윤 대통령의 ‘일방소통 리더십’이 핵심 원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국정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리더십을 바꾸고 야당과의 협치. 여당과의 관계 재설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거꾸로 기존의 리더십을 고수하며 ‘마이웨이’를 고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시행령 정치’ 회귀하나 = 윤 대통령은 당초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지형을 뒤집고 남은 3년여 간 국정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구상을 해 왔다.
방법은 협치가 아닌 야당과의 대결구도 강화였다. 그는 야권을 거침없이 ‘이권 카르텔’로 몰아붙였고 ‘이재명의 민주당’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각종 개혁과제들과 정책 청사진들을 제시했지만 그 와중에도 ‘총선에 이겨야’ 모두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 김건희 여사 명품 핸드백 논란, 이종섭 주 호주대사 및 황상무 시민사회 수석 논란 등 용산 관련 악재에는 미온적으로 대처해 화를 키웠다.
결과는 참담했다.
임기 초를 여소야대로 시작한 대통령들은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5년 임기를 여소야대로 지내는 일은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체제 이후 처음이다.
국정동력 약화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담은 과제들 상당수는 입법이 수반돼 국회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또다시 국회권력을 장악하고 관계까지 악화일로였던 야당의 협력을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추미애 국회의장’ ‘이재명 대표’ ‘정청래 원내대표’ 설이 반농담처럼 떠도는 판국이다.
설상가상으로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국민의 심판까지 받아버렸으니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드라이브를 걸기도 힘들어졌다.
당장 윤 대통령이 내건 ‘3대 개혁(교육·연금·노동)’을 비롯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같은 의료개혁,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세제 개편, 저출산 대책, 여성가족부 폐지 등과 연계된 법안들의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특히 윤 대통령의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수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윤 대통령이 야심차게 24차례 생중계한 민생 토론회의 결과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정부의 시행령 개정이나 규칙 제정이라는 차선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
◆“국정운영 스타일 바꿔야” 지적 =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기존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서는 남은 3년여의 임기를 뜻한 대로 이어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대국민사과, 내각 및 대통령실의 대대적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11일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스타일을 겸손하게 바꿔야 한다”며 “야당 대표가 이재명이라 해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당정관계도 예전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만큼 내려놓고 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앞으로 남은 선거가 멀리 있는 만큼 한동안 윤 대통령이 이번 총선 결과를 당장 만회할 길은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부터 변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에서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 결과는 90% 이상 윤 대통령의 일방적 리더십이 야기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 자신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대국민사과와 국정쇄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윤 대통령이 기존의 국정운영 방식을 고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 온 성정 상 위기감에 오히려 더 강하게 공격적인 국정운영을 시도할 수도 있다”며 “아직 3년이나 남았고 행정·수사권력 등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봤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과거 ‘민정수석실’과 유사한 조직을 대통령실 내에 부활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