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
유엔 안보리가 팔레스타인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일지 논의에 착수했다. 안보리는 8일 팔레스타인의 요청에 따라 2011년 제출한 유엔가입 신청에 대한 재검토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청서를 신규 회원국 가입위원회에 회부해 4월 한달 동안 검토한 후 안보리 전체회의에 보고하도록 했다.
유엔 회원국이 되면 유엔헌장에 따라 국제법과 유엔 결의에 기반한 보호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갖게 돼 국제법 하에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 정치적 영향력 증대와 외교적 지위 강화 등의 이점을 누릴 수도 있어 비회원일 때보다 국제적으로 더 강력히 자국의 주권을 지킬 수 있다.
유엔 회원국 71.5% 지지해도 팔레스타인 가입 못해
팔레스타인은 1988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알제리에서 국가수립을 선포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땅에 건립된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던 입장을 바꿔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선언했다. 그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선언이 잇따르며 유엔 193개 회원국 중 138개국(71.5%)이 동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은 유엔 가입을 못해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유엔헌장 4조는 신규 회원국 가입시 안보리 추천과 총회 의결을 요건으로 명시했다. 안보리 추천은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상임이사국의 거부권행사가 없으면 성립한다. 총회의 경우 가입은 중요문제로 다루어지므로 출석 회원국(총회 개최요건은 없다) 2/3 이상 찬성을 얻으면 결정된다.
팔레스타인은 2011년 9월 마흐무드 압바스 현 자치정부 수반 명의로 유엔에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을 약속하며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안보리 신규 회원국 가입위원회는 요건을 갖추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을 통한 해결을 지지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당시 이사국 중 러시아 중국 브라질 인도 등이 지지했으나 안보리 통과에 필요한 9표의 지지를 얻지 못해 표결은 진행되지 않았다. 유엔 총회는 곧 정식회원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며 업서버(참관인) 지위를 부여하는데 그쳤다. 유엔에 참석해 발언은 하되 투표권 등 회원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침공 이후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이 계속되며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국제 여론이 조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은 지난 2일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가입 신청서의 재검토를 요청해 받아들여졌다. 안보리 구성도 2011년과 달리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이다. 이사국 중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해 알제리 에콰도르 가이아나 몰타 모잠비크 시에라리온 등 8개국은 팔레스타인을 이미 국가로 승인했고, 다른 이사국 슬로베니아도 지난 11일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영국과 프랑스도 우호적 입장이다.
하지만 안보리 표결은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11년 이래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반대해왔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대사는 지난 8일 “우리 입장은 잘 알려져 있고,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직접 협상을 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경확정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둘 사이의 협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아무런 진전도 없이 비극만 되풀이될 뿐이란 게 그간의 역사였다. 미국의 국제 리더십 약화가 불가피한 처신이다.
당사자의 공존 의지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개입
두 국가 해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하다. 당사자들의 협상 의지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개입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공존을 통해 평화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협상이 가능하다. 네타냐후정부와 하마스 모두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비극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하느님이 주신 땅’에서 몰아내려는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평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제 정파들도 이스라엘과 공존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 지난 2월 말 러시아에서 하마스와 파타 등이 회의를 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점은 팔레스타인의 핵심문제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국제사회가 방관만 하기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 여부와 별개로 두 국가 해법 달성을 위한 국제적 논의 틀과 로드맵, 그리고 이를 강제할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국제사회는 언제까지 이 참상을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장병호 외교통일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