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핵자기공명, 방사선 없이도 인체를 뚫어 볼 수 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영상)를 찍어봐야 한대요.” “MRI의 원래 이름이 핵자기공명이라는데 방사선 피폭 우려는 없나요?” “값싼 엑스레이로도 충분히 진단할 수 있을 텐데 병원이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는 건 아닌가요?”
의사가 MRI 검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엑스레이가 뼈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장치라면 MRI는 연골이나 인대 근육 신경 등을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음파는 해상도가 떨어지고 CT(컴퓨터 단층촬영)는 근본적으로 엑스레이와 다를 바 없으므로 이런 연한 조직을 살피는 데는 MRI가 최선의 선택이다. 그래서 보통은 1차로 엑스레이로 뼈의 이상을 들여다보고, 아니다 싶으면 MRI를 찍어 보는 것이다.
그런데 MRI가 핵자기공명 기술을 쓴다고 하는데 그럼 정말 안전한 것일까? ‘핵’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으니 방사선이 걱정되고, 무지무지하게 센 ‘자기장’ 속에 들어간다니 몸속 세포들이 파괴되지는 않을지 막연한 공포감도 생긴다. 게다가 ‘공명’은 또 무슨 소리인가?
우리 몸속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분자는 물이다. 원소로 따지면 우리 몸은 대부분 수소와 산소, 그리고 탄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자의 개수로만 따지면 수소가 가장 많다.
원자핵도 알고 보면 자석
원자는 가운데 무거운 원자핵이 있고 그 주변을 전자들이 도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코일을 감아 전기를 흘리면 전자석이 만들어지듯이 음의 전기를 띈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뱅뱅 돌면 마찬가지로 전자석이 된다. 물론 이런 원자자석은 너무 미약해 자석이라 부르기엔 적합하지 않으나 이런 원자자석들이 나란히 뭉치면 흔히 볼 수 있는 자석이 된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 몸속의 수소원자들은 모두 원자자석들이다. 사실 전자의 궤도운동만 자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그 자체로 스핀이 있고 이 스핀도 자석을 만든다. 그뿐 아니다. 수소의 핵인 양성자도 스핀이 있어 원자핵도 그 자체로 자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원자자석에 비해 원자핵자석은 그 세기가 무시할 만큼 작다. 한편 원자핵자석은 자기장 속에서 나란히 있을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외부 자기장과 나란히 있을 때가 더 안정적이다.
나침반을 큰 자석 옆에 가져다 놓으면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듯이 원자핵자석도 자기장 속에서는 세차운동(precessional motion)을 한다. 이는 마치 팽이가 중력을 만나면 세차운동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렇게 외부 자기장 속에 놓인 핵 자석들은 그 정렬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진다. 이 에너지 차이 만큼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갖는 전자기파를 쏘아주면 핵 자석들의 방향이 뒤집힐 수 있다. 마치 돌고 있는 팽이를 때려서 뒤집어 돌게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렇게 자기장 속 원자핵 자석은 외부 전자기파와 반응을 하고, 주파수가 딱 맞으면 공명상태가 일어나 큰 신호를 만들어낸다. 이를 핵자기공명(NMR)이라 부른다.
핵자기공명 현상은 1930년대 말 이시도로 라비(Isidor Rabi)에 의해 발견된다. 라비는 이 업적으로 194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이후 펠릭스 블로흐(Felix Bloch)와 에드워드 퍼셀(Edward Purcell)은 고체나 액체 속의 수소원자로부터 핵자기공명을 만들어냈고 그 업적으로 1952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후 NMR은 물리학과 화학에서 분자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발전해 유기화학에서 화합물의 구조를 파악하고, 생화학 연구에서 단백질과 핵산과 같은 분자 구조를 밝히는 데 없어서는 안될 기술로 자리잡았다.
화합물 구조의 분석을 넘어 인체 내부 장기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은 1970년대에 나왔다. 폴 라우터버(Paul Lauterbur)와 피터 맨스필드(Peter Mansfield)가 핵자기공명 신호를 3차원으로 재구성하므로써 인체 내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바로 이 기술이 오늘날의 MRI가 되었다. 이들 또한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2003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안전한 자기공명영상
자기공명영상은 지금까지 개발된 진단영상장비중 가장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비록 핵자기공명이란 이름이 숨겨있지만 사실 전리를 일으키는 방사선과는 무관하다. 몸속에서 발생되는 미약한 전파신호를 잡아 3차원 영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전파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핵자기 공명이 필요하고, 그래서 강력한 자기장 속에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은 따르지만 몸속에 금속물질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자기장 자체는 우리몸에 위험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의사를 믿고 편한 마음으로 MRI를 찍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