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오염-건강
“국제사회에서 동아시아 기후변화 분석 주도하겠다”
인터뷰|김 호 한국기후변화학회장
일반적 우울과는 다르게 ‘기후불안’ 문제 접근해야
지자체 적응정책 더 중요. 기후변화적응법 필요해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후불안 등 새로운 정신건강 문제가 등장하고 감염병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감축과 자원안보가 급부상함에 따라 전기·전자제품 재활용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들 제품에서 나오는 오염도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문제가 화두다. 기후위기와 순환경제, 건강. 이렇게 다르게만 여겨지는 주제들도 사실은 하나의 큰 원처럼 엮여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영향은 생각만큼 빠르게 나타나지 않아요. 대규모 자료를 오랜 기간 동안 검토해야 하는 특성상 결과도 늦죠. 바로 체감이 되지 않다 보니까 기후변화와 건강영향 분야에 특별히 진전이 없다고 느낄 수 있어요.”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만난 김 호 한국기후변화학회장은 인터뷰 내내 ‘융합’을 강조했다. 기후변화는 대표적인 ‘다(多)학문적이고 간(間)학문적’인 분야로 전문가들은 물론 기업 정책결정자 시민들과의 소통과 협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한국기후변화학회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학술연구와 기술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9년 7월 옛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2010년 창간한 한국기후변화학회지는 영향력 있고 많이 인용되는 학술지들이 받는 한국판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KCI) 등재가 됐으며 스코프스(SCOPUS) 선정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다. 스코프스는 국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전단계로 보면 된다.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 통계 보완 시급
“우울증 환자는 항상 우울한 게 아니라 기복이 있어요.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에서 총의 방아쇠처럼 특정 트리거를 만나게 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게 되죠. 이때 트리거가 기상 요인이 될 수 있어요.”
김 학회장은 극단적 선택의 경우 자료가 20여년 밖에 축적되지 않아서 장기적인 추이를 보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불안 등은 좀 다른 측면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불안을 단순히 질환 측면으로만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삶의 질 저하와 행복감의 문제로 볼 건지가 관건인 거 같아요. 기후변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 문제가 생긴다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죠. 게다가 취약그룹에게는 큰 문제입니다. 조그만 자극도 큰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죠.”
세계보건기구(WHO)도 기후변화를 미래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꼽았다. 김 학회장은 폭염으로 인한 장애인 위험 증가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이동권이 떨어지는 장애인이 위험을 회피하는 능력이 덜하고 폭염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폭염 경보 체계는 잘 되어 있죠. 하지만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병원 응급실에서 자발적으로 신고를 하도록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라 보기 힘든 측면이 있죠. 전수조사를 실시해서 전체 규모를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염병 대응 위해 북한과 학술적 연계
“많은 분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미래를 맞추는 일에 관심이 있죠. 하지만 기후변화 모델링은 변동성에 더 무게 중심이 실립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정책 A와 B를 집행했을 때 어떠한 차이가 생기는지를 보는 식이죠. 우리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 어떠한 정책을 펼쳤을 때 혹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더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데 활용하는 겁니다.”
김 학회장은 북한과 학술적인 연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감염병 확산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전에 대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뎅기열 매개 모기인 흰줄숲모기 등은 이미 제주도에 살고 있어요. 말라리아 감염자들은 대부분 휴전선 인근 지역 주민들인데, 북한에서 건너온 모기 영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있죠. WHO는 이미 전세계 감염병 감시 체계를 구축했어요. 우리나라도 북한은 물론 적어도 동남아시아까지는 자세히 감염병 변화 흐름을 볼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기후변화학회가 동아시아 지역의 기후변화 현상을 주도적으로 세계에 보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기본적으로 학회는 모든 걸 연구로 승부를 봐야죠. 좋은 연구를 많이 하고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 지역의 상황을 세계에 공신력 있게 알리는 게 목표입니다.”
고열을 동반하는 급성 열성 질환인 뎅기열은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전파된다.
2022년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제교류 활성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모기서식지 확대로 전세계 약 100여개 국가에서 매년 1억명 이상 뎅기열에 걸린다. 예방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돼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말라리아 원충은 얼룩날개 모기류에 속하는 암컷 모기에 의해서 전파된다.
말라리아는 매개체 감염병 중 질병부담이 가장 높은 감염병이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함께 WHO가 지정한 말라리아 퇴치 우선국가다. WHO는 이들 국가에게 2030년까지 말라리아 퇴치 이행을 권고한 바 있다.
건강도시 위해 기반시설 설계 단계부터 고민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에너지를 덜 써야 해요.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려면 몸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하고 궁극적으로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죠. 그런데 이런 변화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기 힘들어요. 이른바 건강도시가 되도록 도시공학적인 측면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죠.”
김 학회장은 “자전거를 많이 탈수록 사고 건수가 늘어날 거 같지만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며 “자전거를 타기에 안전하도록 설계가 된 도시일수록 자전거족들도 많고 사고는 적게 났다”고 말했다.
개인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가 기본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소리다.
나아가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상현상 등 극단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감축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기후환경에 맞게 사회적인 인식이나 적응 체제를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들에게는 감축보다는 적응이 더 중요하고 용이할 수 있어요. 적응과 감축은 수단 등이 좀 다를 수 있죠. 때문에 기후변화적응법(가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기후변화적응에 관한 규정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미흡하죠.”
일본의 경우 기후변동적응법이라는 별도 법을 제정한지 오래다. 물론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 기후변화적응 대책 마련을 빨리하기는 했다.
2010년 10월 환경부 보건복지부 국토부 등 13개 부처가 합동으로 첫 기후변화 국가 적응 대책을 발표했다. 2008년 국가기후변화종합계획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온전히 적응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2010년이 처음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