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칙 개정 ‘복병’ 만난 의대증원 정책

2024-05-09 13:00:28 게재

부산대 부결, 제주대·강원대로 확산 … 교육부 ‘모집정지’ 카드들고 압박

정부의 의과대학 2000명 증원 정책이 마지막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대학 교수들이 증원분을 반영하기 위한 학칙 개정을 막아서고 나섰기 때문이다.

9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법원이 의대 증원 근거 자료를 요구한 데 이어 국립대학들이 증원분을 반영하기 위한 개별 대학의 학칙 개정 단계에서 부결, 보류하거나 상정을 철회하고 나섰다. 이들 대학 모두 국립대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정부는 집행정지 항고심의 경우 이달 중순쯤 결론이 나기 때문에 의대 증원 절차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학칙 역시 가결되지 않을 시 시정명령 등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확산 가능성으로 인해 긴장감이 느껴진다.

◆국립대들의 반란 = 부산대는 8일 교무회의에서 의대 증원을 골자로 한 ‘부산대 학칙 일부 개정 규정안’을 부결했다.

학칙 개정은 기존 125명이던 의대 입학생 정원을 200명으로 늘리고, 2025학년도에는 증원분의 50%를 반영한 163명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반영하기 위한 절차였다.

각 대학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증원분이 반영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제출하고 학칙도 이에 맞춰 손질해야 한다.

부산대 학칙상 학칙을 개정하려면 대학평의원회 심의와 교무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총장이 확정·공포하게 돼 있다. 교무회의는 총장을 비롯해 단과대학장 등이 참여하는 회의체다.

그러나 부산대 교무위원들은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기 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부결을 택했다.

이어 9일에는 제주대가 교수평의회와 대학평의원회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안을 부결했다. 이어 대학입학전형 관리위원회에서 의대 증원 관련 안건에 대한 심의를 보류하고 내부 논의를 더 하기로 결정했다.

강원대도 대학평의원회가 대학 본부에 상정했던 의대 증원 학칙 개정 안건을 이날 철회했다.

이들 대학뿐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도 학칙 개정을 보류하거나 부결하는 움직임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 정부는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정원이 늘어나는 대학 32곳 중 12곳(8일 기준)이 학칙 개정을 완료했다. 나머지 20개 대학은 개정 중이다. 특히 정원이 크게 늘어나는 지역 거점 국립대 9곳 중에선 전남대만 학칙 개정을 마쳤다.

현재까지 학칙 개정을 부결하거나 보류한 대학이 모두 ‘국립대’라는 점은 교육당국으로서는 당혹스런 대목이다. 이번 증원의 핵심 중 하나가 비수도권 국립대가 지역 의료의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대폭 증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확산 차단 나섰지만 = 교육부는 학칙 개정 부결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고등교육법 제32조, 동법 시행령 제28조 제3항의 취지에 비춰 볼 때 대학별 의대정원은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사항에 따라야 한다”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시정명령 등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이를 담은) 학칙 개정 결정은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총장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시정명령을 안 들으면 대학 입학 정원의 5% 이내에서 입학생 모집을 제한하는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압박에 차정인 부산대 총장은 8일 임시 처·국장 회의를 열고 부결된 학칙 개정안을 교무회의에서 재심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교육부 압박 속에서도 이들 대학의 움직임이 나머지 대학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어 교육당국 내부의 긴장감이 감지된다.

◆검증위 꾸려 정책 검증 = 이런 가운데 40개 의과대학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의대 증원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6일 과학성 검증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8일 밝혔다.

전의교협은 “국내외 전문가 30~50명으로 구성된 과학성 검증 위원회를 구성하고 검증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라며 “대한의학회 등 관련 학회의 추천을 통해 전문가 풀(pool)을 짜고 이번 주 내로 위원회 구성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성 검증 위원회는 △인력 추계 검증 △기초의학진흥 △전공의 수련환경 검토 △지역 및 필수의료 검토 △보건의료 정책 현실성 검증 등의 세부 분과를 두고 정부 정책을 검증한다.

또 향후 보건의료인력 예측을 포함한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평가해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린다는 계획이다.

한편 사직 전공의 907명은 9일 정부의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에 대한 헌법소원·행정소송을 냈다.

이들은 행정소송 소장에서 “사직서 수리 금지 처분은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자의적으로 발령됐으며 의료법에는 금지 명령을 내릴 근거가 없고 적합성·필요성·상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가 내린 업무 개시 명령과 진료 유지 명령에 대해서도 추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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