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사이버 영토 전쟁이다
사이버 세계의 데이터 영토전쟁이 시작됐다. 지금까지는 세계가 국경을 넘어 컴퓨터 인터넷망인 가상공간(사이버 세계)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사이버 영토에도 장벽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사이버 세계가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면서 각국이 국가안보를 앞세워 데이터 주권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터넷망을 이용한 플랫폼 비즈니스 패권경쟁이다.
중국의 플랫폼 사업자 틱톡과 한국의 네이버가 당사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미국에서 퇴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그 내용은 틱톡 모회사인 중국 IT 기업 ‘바이트댄스’가 360일 이내에 미국에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에서 서비스를 금지하는 것이다. 사실상 ‘틱톡 퇴출법’이다. 명분은 중국정부가 틱톡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무단수집해 각종 첩보활동에 악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공지능 시대 데이터 주권 지키기 사활 건 나라들
일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플랫폼 기업 네이버가 개발해 일본에 진출한 ‘라인야후’가 통째로 넘어갈 위기다. 일본 내 사용자가 9600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카카오톡’ 이용자 5000만명의 두배 규모다. 일본 인구를 1억1000만명으로 추산하면 대부분 라인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라인야후가 ‘국민 메신저’로 불릴 만큼 성장하자 일본 정부가 경영권을 약탈하려 시도하고 있다.
올해만 ‘라인야후’에 대해 이례적으로 두차례나 ‘행정지도’를 내렸다. 그 이유는 지난해 11월 서버 공격으로 이용자 정보 약 51만건이 외부 유출된 것을 빌미로 삼았다. 제1차 행정지도는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한국 기업인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보안대책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업무 위탁 재검토와 함께 일본 모회사 소프트뱅크가 더 많이 개입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라인’ 운영사인 라인야후가 이용자 정보 유출 ‘재발 방지 및 개선 보고서’를 제출했다.
일본정부는 네이버의 대책이 불충분하다며 2차 행정지도 조치를 강행했다. 그 내용은 대주주인 “한국 네이버에 대한 업무위탁 축소 및 종료에 대한 심도 있는 설명과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 재검토 요구”다. ‘자본관계 재검토’라는 강력한 조치를 보면서 일본이 ‘라인야후’의 한국 네이버 지분을 차지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재 라인야후의 주식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출자해 세운 A홀딩스가 64.5%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개인 주주다.
일본정부가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 재검토’를 매우 서두르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룹 전체에서 시급하게 검토를 진행시켜 구체적인 결과를 보고하라”는 행정조치 때문이다. 일본정부의 의도는 명확하다. ‘한국의 네이버는 일본 라인야후 경영에서 손을 떼라’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도 앞장서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A홀딩스 주식을 네이버로부터 매입하기 위해 협의를 시작했다”고 보도하며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구글 메타 애플 등 빅테크 IT 플랫폼은 각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플랫폼 점유율을 계속 확대해 나가는 추세다. 문제는 플랫폼 사용자를 통해 확보하게 되는 각종 데이터 정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 쟁점이다. 각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데이터 정보에 대한 ‘보호장치’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AI 인공지능의 대중화로 데이터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외국 플랫폼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됐다.
유럽연합(EU)도 구글 메타 애플 등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글로벌 AI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자국 기업보호와 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데이터를 국내에서 관리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데이터 국경’을 견고하게 세우는 것이 곧 국가안보라는 인식이다. 한마디로 ‘AI 국가주의 시대’ 사이버 영토전쟁이다.
일본 ‘라인야후’ 사태에도 한국정부 대응은 미온적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미온적이다. ‘라인야후’는 한국 기업이 20여년을 투자해 인재를 키우고 개발한 기술 자산이다. 한국의 인력만 2000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한국의 경제 자산과 기술인력을 한입에 털어 넣으려 한다.
한국정부와 국회, 기업은 사즉생의 각오로 대응해야 한다. 이미 확보한 ‘사이버 영토’를 빼앗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보다 선명한 자세로 국익 수호에 다 걸어야 한다.
김명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