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갈등’ 장기전 돌입 조짐
의·정, 서울고법 판단 후 ‘즉각 항고’ 계획 … 전공의·의대생 ‘전면 백지화’ 주장
석달째 이어지는 의정 갈등을 불러일으킨 의대 증원을 놓고 법원 판단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정부와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의정 갈등은 당장 봉합될 가능성이 적어 당분간 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전국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15일 온라인으로 임시총회를 연 뒤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이 증원 효력정지를 인용할 경우 결정을 존중해 진료의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며 “반면 각하나 기각이 될 경우 장기화될 비상 진료시스템에서의 ‘근무시간 재조정’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상의했다”고 밝혔다.
전의비는 정부의 의대증원 강행 추진에 반대하는 각 의대의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모인 단체로, 40개 의대 중 19곳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 집단 휴진까지 검토 = 이 단체는 지난달 26일 전공의 장기 이탈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소속 의대의 관련 병원에서 주 1회 정기적인 휴진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3일에는 임시총회 후 “정부가 의대 증원을 확정하면 1주일간 집단 휴진을 포함한 다양한 행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의비는 ‘주 1회 휴진’을 계속하는 방안과 ‘1주일간 휴진’을 단행하는 방안을 모두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장기전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뿐 아니라 정부도 대법원에서 또 한 번 판단 받겠다는 계획이라 혼란은 법원의 판단 결과에 관계없이 의정갈등과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13일 브리핑에서 “집행정지 신청 인용 결정이 나면 즉시 항고해서 대법원 판결을 신속하게 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16일 오후 결정 예정 = 이런 가운데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 결정을 이르면 16일 오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각하(소송 요건 되지 않음)나 기각(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 결정을 하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의 행정 절차가 빠르게 마무리된다.
법원 결정을 기다렸던 일부 대학들은 의대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전형심의위원회는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해 각 대학에 통보하면 대학들은 이달 말 혹은 다음 달 초 ‘수시모집요강’ 발표와 함께 정원을 확정한다.
반면 인용(증원 효력 정지)하면 정부의 내년도 의대 증원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이 경우 정부는 내년도 입시의 의대 증원을 중단하고 내후년 입시에 증원분이 반영되도록 법적 절차를 밟으면서 증원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각하·기각 결정이 나오면 의료계가, 인용 결정이 나오면 정부가 대법원에 재항고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달 말 혹은 다음 달 초로 예정된 대학별 정원 확정 때까지 대법원이 결정을 내리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앞서 재판부는 정부에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법령상 어떤 절차를 거쳐 언제 최종 확정되는지, 증원 규모 2000명은 어떻게 도출했는지 등 의대 증원 근거 자료 제출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지난 10일 49건의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정부의 자료 제출 후에는 이들 자료를 증원 논의의 근거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정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전공의·의대생 복귀 가능성 낮아 = 법원 결정은 2월 말 이후 석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 상황의 결정적인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려도 의정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선 전공의들의 복귀가 불투명하다. 전공의 중 고연차는 수련 기간 중 석 달 넘게 이탈하면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달 안에 일부 복귀할 수 있겠으나, 전체 전공의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전공의를 비롯한 의사들은 내년뿐만 아니라 향후 증원 계획을 모두 백지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기때문에 앞으로도 이들은 강경한 목소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유급 위기에도 휴학을 강행하고 있는 의대생들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연세대 원주의대, 부산대 의대, 제주대 의대, 차의과대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 의대 등의 학생 비상대책위원회는 14일 “사법부의 가처분 인용과 관계없이 의대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패키지 전면 백지화를 이뤄낼 때까지 학업 중단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