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모독죄’ 태국활동가 110일 단식후 사망

2024-05-17 13:00:01 게재

64일 단식, 재수감후 두번째 단식 민주화 탄압도구 ‘왕실모독죄’ 도마

‘왕실모독죄’로 기소된 태국 민주화운동가가 옥중에서 110일간의 단식 끝에 14일 사망했다. 태국 민주화운동단체 ‘탈루왕’ 소속 활동가 네티폰 사네상콤(여.28)은 지난 1월 26일 구금돼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온라인 영어 강사이자 민주화운동가인 그녀는 수감 이튿날부터 사법개혁과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에 나섰다.

네티폰은 2022년 3월 방콕 쇼핑몰에서 왕실 자동차 행렬이 이동할 때마다 실시되는 도로교통 통제에 대한 대중의 의견을 인터뷰한 후, 국왕 모독과 선동죄로 기소됐다. 태국에선 ‘불경죄(왕실모독죄)’로 불리는 형법 112조에 따라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등의 경우 죄목 당 최고 징역 15년에 처한다.

그녀는 이전에 2022년 5월 3일 구속된 이후, 항의의 표시로 64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다. 건강이 심각히 위험해지자 보석으로 석방됐다. 그러다 정부는 지난 1월 26일 보석을 취소하고 그녀를 다시 구속했으며, 법정 모독죄로 1개월 구금을 추가했다. 그러자 그녀는 1월 26일부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자의적 구금에 항의하여 110일간 단식투쟁을 벌이다 끝내 사망했다.

국제앰네스티는 15일 성명을 내고 “그녀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이것은 태국 당국이 평화적인 반대 표현을 침묵시키기 위한 것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의 자유를 가혹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태국 정부는 모호하게 표현된 법률 조항을 억압의 도구로 사용해 왔으며 평화적인 인권 행사를 공공 질서에 대한 위협 또는 군주제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왕실이 신성시되는 태국에서 군주제 개혁은 금기시되는 주장이지만, 2020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이후 왕실모독죄 폐지 요구가 표면화됐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는 개혁을 요구하는 민의가 폭발해, 왕실개혁과 왕실모독죄 폐지를 주장한 태국 진보당인 까우끌라이당(전진당)이 하원 500석중 151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다. 수도인 방콕시 33개 선거구 중 32개를 싹쓸이 했다. 하지만 전진당 대표인 피타 당수는 총리로 선출되지 못했다. 총리 선출을 상하원의원 750명으로 구성된 의회에서 하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 500명의 하원의원과 달리 상원의원 250명 전원을 군부가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타 당수는 의원 직무를 정지당하고, 의원직 박탈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왕실모독죄 비판 여론이 높아도 유지되는 배경은 현행 법체계와 사법부가 이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태국 헌법재판소가 ‘왕실 개혁이나 불경죄 폐지 요구는 위헌’이라고 판결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또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는 군부가 왕실과 공생관계에 있어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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