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기 맞춤형 출산지원정책 절실하다
“출산장려금이 아이를 키우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고 둘째를 가지는 데 동기부여가 돼 둘째도 계획 중입니다.” 부영 8년차 직원의 얘기다. 부영은 지난 2월 직원 자녀 1인당 출산장려금 1억원씩을 지급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부영은 앞으로 출산하는 직원 자녀 모두에게 같은 혜택을 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출산·양육지원금에 근로소득세가 적용돼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정부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9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소득세법이 개정되면 회사는 출산·양육지원금을 필요경비로 인정받아 법인세 감면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출산지원금을 받은 근로자는 전액 비과세 처리된다. 한 기업의 선도적이고 파격적인 조치는 조세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하지만 발 빠른 기업 조치에 비해 정부와 국회의 처리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백화점식 정책은 많지만 실제 현장적용은 어려워
우리나라 가임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수인 합계출산율 수치는 가히 파국수준이다. 2022년 0.78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는 0.72명으로 이 기록마저 깼다. 출생아수는 23만명으로 역대 최저다. 특히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내려앉았다. 1분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2월 출생아수는 1만9362명으로 사상 처음 2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0명에 못 미치는 유일한 나라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전국에 거주하는 25세 이상 49세 이하 국민 20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주거 일자리 등 ‘경제적 조건’과 ‘일·가정양립 지원’ 조건이 개선된다면 결혼출산 의향이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응답했다. 응답자 61.1%는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육을 어렵게 느끼는 부담감, 양육비용 부담 등 사유로 무자녀 남녀 57.5%는 ‘자녀출산계획이 없거나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남성은 경제적 조건이 개선되는지를, 여성은 결혼 후에도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조건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출산·양육 관련 법정제도는 최소 15가지다. 하지만 출산휴가 등 일부 제도 외에는 활용률이 저조한 편이다. 지난해 무역협회 회원사 506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응답기업 절반이 출산·양육지원제도 활용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대체인력 채용은 기업이 가장 많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문제다. 직원의 출산휴가·육아휴직·단축근무시 업무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대체인력 채용은 필수다. 현실에서는 대체인력을 구하기보다는 대부분 사내 기존인력 업무 가중으로 연결되는 형편이다. 휴가를 가는 직원도 업무가 가중된 남은 직원 모두 불편한 상황이다. 그러니 활용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제도가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기업의 출산·양육친화제도는 출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기업이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활용하도록 하는 유인이 부족하다. 기업 40.3%는 현행 출산·양육지원제도가 기업 입장에서 ‘인센티브가 적고 패널티가 많다’고 답했다. 기업이 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접근 방식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2019년 기준 OECD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예산(청년 일자리·주거대책 제외) 수준 평균은 2.4%다. 한국은 0.95%에 불과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예산이 늘었지만 OECD 다른 국가와는 차이가 여전하다. 가족예산 확대를 통해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은 우리나라 2.5배 수준이다. 이들은 한국에 비해 서비스 비중보다 현금 지원 비중이 높은 특징이 있다.
즉각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책 시행 안하면 회복 불가능할 수도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 기업체의 99.9%, 종사자수 81.3%를 차지한다. 출산지원금 1억원 지급처럼 일부 대기업이 효과 높은 지원정책을 앞서서 내놓고 있는 만큼 이를 적극 지원하는 것은 절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근로자와 사업주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출산지원제도를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 사회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 시행이 사업주의 책임으로만,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되도록 정부가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인류학자 볼프강 루츠의 ‘저출산 함정 가설’처럼 즉각 강력하고 효과적인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하지 않으면 출산율 저하가 반복되며 정상회복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범현주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