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부동산 PF발 위기 넘길 수 있으려나
정부가 마침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에 대해 칼을 뽑고 나섰다.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한폭탄처럼 우리 경제를 압박했던 PF 대출에 대해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사업성 기준을 강화해 살릴 곳은 신규 자금을 투입해 살리고, 부실한 곳은 경·공매 등을 통해 퇴출시킨다. 해결 방향을 시간벌기에서 부실정리로 바꾼 것이다.
PF는 금융회사들이 사업성을 담보로 부동산 시행사에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법이다. 대출만 받으면 10% 내외의 적은 돈으로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어 시행사에는 단비와 같다. 하지만 부실 위험이 크다는 점이 문제다. 따라서 금융회사가 프로젝트 계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 미래 사업성을 철저하게 따져 본 뒤 자금을 대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금융회사들은 건설업체인 시공사에 채무보증을 강요한 뒤 대출을 해주는 식으로 PF를 ‘돈벌이’용으로 활용해왔다. 이런 방식의 PF 대출은 모두가 돈을 버는 부동산 호황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셍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기가 위축되면 곧바로 부실화하기 마련이다.
근본대책 미적대다가 부실 규모만 키워
재작년부터 금리가 고금리로 바뀌면서 부동산경기가 가라앉고 자재비와 인건비마저 폭등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민간·공공사업할 것 없이 상당수 프로젝트가 착공을 못 하거나 대금 미지급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유치권 행사 중’이란 현수막을 내건 현장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특히 지방에서는 악성 미분양이 넘쳐나 건설사 187곳이 폐업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건설자재 재고도 날로 쌓여갔다.
솟아날 구멍은 없는데 대출만기가 되니 연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증권사의 연체율이 최고 14%에 육박하는 등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 특히 제2금융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역경제도 휘청거렸다. 식당 등 골목상권 경기가 얼어붙고 건설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사라져 어려움을 겪게 됐다.
국내외 분석기관들은 PF 대출 부실화가 실물경제 전반으로 전이될 경우 엄청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코로나19가 마무리되면서 경기가 깜짝 반등하자 PF 구조조정을 미룬 채 땜질식 대책으로 일관했다. 시공능력 16위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작년 말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했는데도 그랬다. 이는 부동산경기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기여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10억원 매출 시 일반 제조업은 5명을 고용하나 건설업은 13명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어 서민경제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부동산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는 정부의 재정과 세제지원, 규제완화 등 땜질식 대책으론 사태 해결에 역부족이었다. “PF 부실이 금융으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만을 반복하면서 이루어진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자금경색과 도미노 위기설로 이어졌다. 궁극적으로 부실을 더 키운 꼴이 됐다. 대출금을 못 갚아 PF 사업이 부도나면 시행사 건설사 금융권이 한 고리로 타격을 입고 이것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파급된다. 시중에서 ‘4월 위기설’에 이어 ‘5월 위기설’이 나도는 등 위기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쓰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정부가 하는 수 없이 적극적인 조치를 꺼내 들었다. ‘레고랜드 사태’로 PF 리스크가 부상한 지 1년 반 만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부실 사업장 정리 지연은 정상 사업장까지 위기로 내몰아 부동산 공급을 크게 위축시킨다. 저금리로의 전환이 늦어지고 있는 터에 정부가 이제라도 적극적인 정리로 방향을 튼 것은 다행스럽다.
옥석 제대로 가리기와 속도에도 신경써야
PF 부실은 유동성이 넘쳐날 때 즐겼던 ‘돈 잔치’ 후유증이다. 유동성에 의존해 부실 건설사가 연명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부동산 PF 연착륙 방안’으로 구조조정 무대에 오를 PF 사업장은 23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정부는 내다봤다.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 사업 규모 230조원의 10% 수준이다. 금융권 손실도 불가피하다. 특히 고위험 PF 비중이 높은 제2금융권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PF발 위기는 우리 경제에 오래 잠복해왔다. 이번 대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옥석을 제대로 가려내는 등 범위와 속도에 신경써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이 될 업체와 거액의 손실을 보게 될 금융회사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