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집·녹화사업’ 국가 민사책임”

2024-05-23 13:00:10 게재

법원, 피해자에게 최대 8천만원 배상 판결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강제징집·녹화사업(사상전향 강요)으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에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6부(황순현 부장판사)는 강제징집·녹화사업 피해자 7명에게 국가가 3000만~8000만원의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같은 법원의 민사합의15부(최규연 부장판사)도 피해자 15명에 대해 비슷한 액수의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은 ‘붉은 사상을 푸르게 한다’는 이유로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강제 징집하고 녹화사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학내 간첩과 북한 찬양자를 조사하는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노릇을 강요하고 고문·폭행·가혹행위·협박 등 경제적·육체적·정신적 위해 행위도 가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지난 2022년 이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국가의 사과와 보상을 권고했다.

이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해 5월 피해자들을 모아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판결 외에도 120명의 피해자가 14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민변의 이영기 변호사는 선고 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폭력 행위가 인정됐다는 점에서 나름의 진일보한 역사”라며 “진화위의 진실 규명 결정에 이어 사법적 정의를 확인한 중요한 의미의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이번 판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마땅하고 이후 명예회복 등 조치를 책임지고 이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자분들과 함께 신중하게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김형보 강제징집·녹화 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40년 동안 국가의 누구로부터도 직접 사과나 위로를 받은 적이 없다”며 “사법부는 앞으로도 국가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판결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피해자 남철희씨는 “박정희 정부가 영구 집권을 하기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어 당시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한 학생들을 전부 입건시켜 고문한 뒤 강제징집 시켰다”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민족의 미래를 위해 노력한 것 뿐인데 그런 대접을 받은 것에 서운한게 많았다”고 말했다.

남씨는 “늦게나마 법원 판결이 나왔으니 국가에서 정식으로 사과하면 좋겠다”며 “돌아가신 친구·후배들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고 말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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