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정부 의료정책 불참’ 결의
전의교협 “일방적 정책 거수기 거부”
일부 대학 ‘의대 증원’ 학칙 개정 불발
정부가 의대 증원 절차 마무리를 서두르는 가운데 의대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는 증원 관련 학칙 개정이 교수사회의 반대로 제동이 걸리고, 교육부가 반대하고 있는 의대생들의 휴학 승인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이 참여하는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22일 “정부 의료정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의교협은 이날 오후 7시 총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정부의 의료 및 의학교육 정책에 대한 불참 운동’을 결의했다. 이는 의대 증원 정책에 속도가 붙으면서 의대 교수들이 집단휴진에 이어 또 다른 강경 카드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위원회에는 국가암관리위원회·심뇌혈관질환관리위원회·수련환경평가위원회·중앙응급의료위원회 등 의대 교수가 참여하는 보건의료 관련 위원회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의협은 23일 오전 보도자료를 내 “앞으로도 전문성을 무시하고 동일하게 반복될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교수들은 거수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거부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한의학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와 협력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전문위원회와 자문위원회 등에 대한 불참 운동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경상대·전북대 학칙 개정 부결 = 이런 가운데 의과대학 증원 관련 학칙 개정이 각 대학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경상국립대와 전북대에서 제동이 걸렸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에 따른 대학별 학칙 개정의 경우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의무 사항이다.
22일 경상국립대학교에 따르면 이날 가좌캠퍼스 대학본부에서 열린 교수·대학평의원회에서 의대 증원과 관련한 학칙 개정안이 부결됐다.
이에 따라 전날 의대 정원을 76명에서 138명으로 늘리기로 한 학무회의 심의는 하루 만에 무효가 됐다.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안은 교수들로 구성된 교수평의원회와 잇따라 열린 교직원·학생 등으로 구성된 대학 평의원회 모두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상국립대 관계자는 “평의원회 구성원 다수가 현재 시설과 교수진으로 138명의 인원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대해 권순기 총장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추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대에서도 이날 의대 정원 증원을 골자로 한 학칙 개정안이 교수평의회에서 부결됐다.
전북대는 이후 평의회 재심의를 요청하거나 학무회의를 열어 학칙 개정안을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22일 현재 의대 모집인원이 늘어나는 32개 대학 중 20개 대학에서 관련 학칙을 개정했다.
◆유급 임박에 고민 커지는 대학 = 의대생들의 유급이 현실적으로 가시화되면서 대학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2월부터 휴학계를 내고 수업 거부에 들어간 의대생들이 복귀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단유급’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휴학 승인 여부를 놓고 학생들과 정부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대학으로서는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 가운데 37개 대학이 이미 온·오프라인으로 수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수업 참여율은 저조하다.
대학들이 집단유급을 막기 위해 계절학기 최대 이수 가능 학점 기준을 상향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부분 ‘임시방편’ 성격이다.
의과대학 안팎에서는 이미 1년 치 교육과정을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시간이 흘러버려 학생들이 돌아오더라도 수업을 듣고 진급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거부 중인 학생들이 집단유급될 경우 휴학이 승인되지 않아 발생한 피해를 둘러싸고 법정 다툼이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의 한 의대 교수는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2~3회 유급되면 퇴교해야 한다. 이미 1~2번 유급 경험이 있는 학생의 경우 퇴교 위험이 있는 셈”이라며 “(학생이) 휴학을 요청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특별한 사유 없이 인정을 안 해줬다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연세대의 경우 교수회의에서 ‘어느 시점에서는 휴학을 승인할 수밖에 없다’는데 결론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학칙상 휴학 승인권자가 총장이어서 승인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연세대 외에도 경상국립대 의대도 휴학 승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대학본부에 전달했다. 고려대·이화여대·원광대 의대도 휴학 승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교육부는 ‘동맹휴학’은 휴학 사유가 아니므로 학칙에서 규정한 다른 절차와 요건을 갖췄더라도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21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공개 대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측은 “대화 의지를 진실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