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권영국 정의당 당대표 후보
“해결사·민원 창구처럼 원내에 안주하다가 현장성 떨어져”
“이제는 정의당이 왜 존재해야 하느냐에 답을 해야 한다”
“노동 문제 제대로 대변하는 정당 정체성을 살려내겠다”
강령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 ‘비정규직의 정당’ 실천
“현장성 강화해 같이 고민·호흡·해결 활동 지속 추진” 강조
권영국 정의당 당대표 후보는 정의당의 ‘0석’ 완패와 ‘원외 추방’의 원인을 ‘원내 안주’와 ‘현장성 부재’에서 찾았다. 그러면서 ‘현장’이라는 원점에서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권 후보는 엄정애·문정은 부대표후보와 함께 사실상 추대형식으로 ‘원외 진보정당’의 지도부로 정의당 재건에 나설 전망이다. 후보자 부재로 한 번 미뤄졌던 당대표와 부대표 선거는 오는 26일과 27일 치러진다.
권 후보는 23일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정의당이)시간이 갈수록 원내에서 안주하는 활동 중심으로 갔다”며 “현장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일반 대중들과의 접촉 그리고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노동의 현실을 직시하려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의당의 강령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 ‘비정규직의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출마선언문에서는 “정의당의 모든 것을 바꾸어 나가겠다”고도 했다.
권 후보는 ‘거리의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포항공고,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풍산금속에 근무한 후 사시에 합격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을 거쳐 민변에 들어갔고 경북노동인권센터장, 정의당 노동인권안전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정의당의 현주소부터 진단하겠다. 정의당이 노동 부분에 천착해 왔는데 최근에는 많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있다.
정의당 강령을 보면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표현을 썼고 또 비정규직의 정당이라는 표현도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원내에서 안주하는 활동 중심으로 갔다’고 느꼈다.
노동권 문제 등 노동이 갖고 있는 제도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6411번 버스로 대변됐던 노동법 밖이라든가 또는 노조 울타리 밖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얼마만큼 제대로 대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싸웠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다. 중대재해 처벌법이라든가 노란봉투법 등은 민주당까지 견인해내는 역할을 하지만 노동문제는 입법이나 원내 활동에 국한돼 있는 건 아니다.
●원내에 안주한 활동이 현장성 부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인데 하지만 여전히 정의당은 원내정당을 지향하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원내 정당이 마치 해결사나 민원 창구처럼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노동 시민사회운동이 존재하고 제도화된 정치운동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연결돼 정치활동을 전개해야만 현장의 문제나 구체적으로 우리 삶 속에 녹아있는 문제들이 정치영역으로 제대로 이슈화되거나 옮겨올 수 있다. 이게 안 되면 정당은 민원 창구 역할로 가게 되는 경향성이 크다.
●정의당이 민주당 등 거대양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것 아닌가.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정의당이 거제도로 내려가서 천막 당사를 치면서 싸움을 했다. 문제를 원내로만 끌고 들어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다양한 일반 대중들과 접촉하고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노동의 현실을 직시하려는 게 필요하다.
●정의당의 근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나.
이제 정의당이 왜 존재해야 되는가에 대한 답을 해야 된다.
3가지다. 첫째는 보수 양당 체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노동 문제다. 노동의 문제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려내겠다. 기후 위기 문제는 단순히 환경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미래세대의 문제이고 지구 생태계의 문제다. 불평등의 문제도 있다. 여성, 장애, 아동 차별을 포함한 성평등과 관련한 구조적인 문제 역시 핵심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과제다.
●출마선언때 ‘광야에 나갈 각오’라고 했다. 당원도 줄고 현장 조직도 많이 약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대책은 무엇인가.
중앙 차원에서부터 현장과의 결합력을 높여야 한다. 일단 가시적으로 모범을 보이기 시작해야 된다. 또 지역에서는 지역의 시민사회, 진보정당과 연대해 사업을 진행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현장 지역위원회나 노동위원회 같은 조직이 살아 있는 데가 있다. 그런 활동들을 좀 더 활성화시켜 나가면서 확대해가는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다.
●2년후 지방선거가 있다. 선거를 통한 평가를 받는 건가.
너무 급하다. 20년간 진보정당이 원내에서 활동하다가 원외로 추방당한 상태다. 우리가 과욕을 부리면 안 된다. 오히려 충분히 성찰해야 한다. 현장으로, 민중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노동 중심과 현장성을 강화하겠다. 지방선거에 대한 준비도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선거용으로 비치도록 활동해서는 안 된다.
●선거에 집중하다보면 현장과의 단절이 생기지 않나.
우리가 노동조합을 찾아갔을 때 ‘아니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선거 때만 되면 와가지고 지지해 달라, 세액 공제(후원금 납부)해 달라 이런 요구만 한다. 우리가 필요할 때 현장에 와서 문제를 듣고 같이 싸우고 해야 이 정당이 노동 문제를 굉장히 주요하게 바라보고 있고 주요 과제로 삼고 있구나하는 신뢰가 형성되는데 평상시에 그런 활동이나 실천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 때만 되면 와가지고 손을 벌린다. 그렇게 해도 되겠냐’는 지적들이 꽤 많이 있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됐던 거 아닌가.
정치는 삶을 개선시키고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노동자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노동 현장의 노동 조건일 텐데 이런 문제들을 평상시에 같이 고민하고 호흡하면서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지속적으로 추진을 해 나가야만 우리가 노동에 중심을 두고 우리 사회를 바꿔 나가겠다, 개선하게 나겠다 하는 말들이 신뢰를 줄 수 있게 된다.
●출마를 결심하면서 가장 고민됐던 대목은 무엇인가.
당에서 정당 활동을 본격적으로 한 게 아닌 상태에서 이 어려운 국면을 내가 과연 감당이 가능할까 라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또 백지 상태에서 시작을 해야 될 수도 있어서 정치 활동이나 정당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보지 않았던 입장에서는 과연 이 어려운 난국을 풀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컸다.
●원외로 가면 더 협력할 대상이 많아지는 것 아닌가.
역발상을 하면 원외활동이 현장으로 오히려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제(22일) 국회 청소 노동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분들이 굉장히 아쉬워했다. ‘노동자들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정당을 정의당으로 봤는데 너무 안타깝다, 돌아오시라’고 했다. 굉장히 뭉클했다. 하여튼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사회 경제적인 약자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도록 하겠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