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말곤 약속 지키지 않는 윤 대통령
총선 직후 “국민 목소리 경청” … 김건희 여사 논란엔 ‘사과’
민심 찬성하는 특검법에 거부권 … 김 여사, 대책 없이 복귀
여당 중진 “국민, 다시 매 들 수밖에” … 야당 “항복시켜야”
4.10 총선 참패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겠다”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약속했다.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해선 사과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후 보여준 모습은 자신의 다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여권에서도 “윤 대통령이 바뀐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민심은 다시 한 번 회초리를 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국정운영 해온 것에 대해 국민의 평가가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 담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총선 참패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더욱 소통하는 정부, 또 민생에 관해 국민의 목소리를 더욱 경청하는 정부로 바꿔야 한다는 기조 변화는 맞다고 생각한다”며 소통과 경청을 약속했다. 김 여사 명품백 논란에 대해선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윤 대통령은 반성과 사과, 소통·경청을 국민 앞에서 다짐한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후 행보는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여론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월 29일~5월 1일, 전화면접 조사,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찬성’이 67%에 달했다. ‘반대’는 19%에 머물렀다.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약속해놓고 2주도 지나지 않아 국민이 찬성하는 특검법을 거부한 것이다. 특검법은 28일 재투표에 부쳐진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부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논란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김 여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공개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총선에 악영향을 우려해 지난해 12월 이후 공개행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김 여사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복귀한 것. 야당이 요구한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답 없이 김 여사 복귀가 이뤄지자, 여권에서조차 “사과의 진정성이 통하겠냐”며 우려스러운 표정이다.
윤 대통령은 한술 더 떠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자신의 검찰 측근을 앉혔다. 김 여사 수사에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직후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에도 친윤(친윤석열)을 집중 배치했다. 당 지도부와 핵심 당직에 친윤 인사가 대거 발탁됐다.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고향 친구’ 정진석 의원을 앉혔다. 총선에서 낙선한 이원모 전 인사비서관을 다시 대통령실로 불렀다. 국민과 더 소통하겠다면서 자신과 국민 사이에 ‘측근 장벽’을 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의 반성과 달리 정부의 무능은 여전했다. 정부는 ‘국외 직접구매(직구) 금지’ 방침을 밝혔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자, 사흘 만에 없던 일로 했다. “경청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약속은 국정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주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등 중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여론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렸다가 낭패를 맛보았다. 윤 대통령은 그때마다 “개선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직구 논란에서 재확인됐듯 바뀐 건 없다는 비판이다.
여권에서도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더 거센 심판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26일 “(윤 대통령이) 지킨 약속이라고는 출입기자들에게 대접한 김치찌개밖에 없다”며 “총선에서 참패했는데도 (여론이 지지하는) 특검법을 거부하고, 김 여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TV에 나오고, 검찰과 대통령실에는 내 사람 앉히고, 이러면 누구도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진의원은 “국민 입장에서는 매를 댔는데, 맞은 사람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판단이 들면 다시 매를 들 수밖에 없다. 아마 다음에는 정말 아프게 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5일 야 7당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개최한 ‘채 상병 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에서 “투표로 심판해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반성하지 않고 역사와 국민에게 저항한다면 이제 국민의 힘으로 그들을 억압해서 항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