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불안전한 행동, 교육·감시로 방지할 수 있을까

2024-05-30 13:00:08 게재

기업의 임원들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관련 자문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표이사는 “중대재해 80%가 근로자의 실수(불안전한 행동)로 인해 일어난다고 들었다”며 “그런 사고에 대해 현장의 구체적인 작업도 잘 모르고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경영자를 처벌한다는 것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법 제정 배경과 취지에 덧붙여 “근로자의 실수는 결과적 관점이고 사고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같이 참석했던 변호사는 “경영자를 너무 긴장하게 만드는 얘기 같다”고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검찰 경험이 풍부하신 그분과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상황 감각-인지–판단–행동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의 행동절차다. 절차 면에서 센서와 컴퓨터가 내장된 로봇과 동일하다. 로봇에게 자기 행위를 책임지라고 할 수 없지만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인간은 자기 행위를 의식할 수 있고 의식으로 통제(자유의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행동은 모두 의식의 통제를 받는 걸까

꿈을 자기 의지대로 꾸는 사람은 없다. 정신분석학자들의 해석은 논외로 꿈은 자신의 생각 경험 기억 상상 등의 비체계적인 조합으로 꿈속의 행동은 의식의 통제가 불가능하다.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꿈은 잠에서 깨어날 때 즉, 뇌가 무의식에서 의식상태로 전환될 때 엄청난 양의 신경세포가 조율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실제 1987년 토론토에서 한 남성이 새벽에 장모를 흉기로 살해했다. 그 사건 재판에서 그가 몽유병 환자이고 몽환상태에서 일어난 행동임이 입증돼 무죄가 선고됐다. 그 자의 살인 행위는 의식이 통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상 행위를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는 무의식적인 행위도 있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지금 직장에 와 있다면, 오늘 출근길에 당신이 한 행위들을 떠올려 보자. 어떤 행위 또는 동작들이 기억나는가. 지하철역 전광판에서 열차의 상황을 확인하고 그 차를 타기 위해 계단을 급하게 올라간 것은 의식적이어서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갈 때 몸의 무게중심을 양발 사이에 두려는 의도가 있었나? 그를 위해 상체와 무릎은 얼마큼 구부렸는지, 양팔은 얼마나 크게 저었고, 전후 양측 발 벌림은 얼마로 했는지, 차에서 내려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어떤 동작을 했는지, 차에 어느 발이 먼저 차에 올랐는지 기억하는가?

대부분 기억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이다. 실제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행동의 구체적인 동작들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행동이고 이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과 기제는 의식적 행위와 별개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을 피하려고 옆으로 벌린 발이 계단을 보수 중인 굳지 않은 콘크리트에 빠졌다면 그 행위는 의식이 통제한 것일까?

그렇다면 의식은 무엇을 하는 건가

의식은 군대 본부의 역할로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 같다. 본부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적군을 포함한 상황 정보와 동태를 파악·분석하고 아군의 전쟁수행 능력을 감안한 전략 전술을 결정한다. 그 전략 전술에 따라 예하 각 부대에 수행할 작전을 지시하고 결과를 관찰한다.

그리고 변해가는 적과 아군의 상황변화를 감지해서 전략과 전술을 조정한다. 이 과정에 본부는 예하 각 부대의 전투에 관여하지 않는다. 전투는 현장의 상황에 따라 예하 부대 지휘관이 무의식화된 전투동작으로 훈련된 전투병을 지휘하는 것이다. 이것이 효율적인 군대운영 시스템이다.

뇌 역시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컴퓨터 게임에서 게임 규칙과 유닛들의 속성들을 파악하고 손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의식이 게이머의 행위를 통제하지만, 익숙해지면 열량이 적게 소모되는 뇌의 무의식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때 게이머의 의식을 관장하는 뇌 부위는 쉬거나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고 후에 사고원인으로 지목되는 불안전한 행동들 중에 고의적인 위반 외 대다수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이다. 물론 고의적인 위반 역시 근로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사회적 규범과 문화의 문제다. 우리는 누구나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는다.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작업자의 행동이 정말 중요하다. 이 문제를 안전수칙 교육과 감시인 배치로 해결하려고 하는 현장의 활동과 그렇게 몰아가는 현재의 규제, 정책은 본질적인 해결과 거리가 멀다. 작업자의 행동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근본적인 해결책이 강구돼 실행되도록 정부가 정책과 규제에서 길을 열어줘야 한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