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탁구부 지원’, 하동 ‘유기동물 보호’

2024-06-04 13:00:21 게재

고향사랑기부 '지정기부제' 시행

첫날 8개 지자체, 11개 사업 등록

민간플랫폼 모금은 계속 허용안해

고추와 구기자로 유명한 충남 청양군은 지난해 출생아 수가 67명에 불과한 인구감소지역이다. 당연히 어린 아이와 학생들이 매우 적다. 그런데 이런 청양군에 몇 해 전부터 학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정산초·중·고등학교가 탁구부를 집중 육성하고, 전국대회에서 여러차례 우승을 거두면서 탁구선수를 지망하는 전학생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학생이 줄어 고민이던 학교는 늘어나는 전학생들이 반갑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지금도 탁구부 운영비가 빠듯한데 학생들이 더 늘어나면 비용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양군이 나섰다. 올해 고향사랑기부제에 ‘정산 탁구부 훈련용품 및 대회출전비 지원사업’을 첫 지정기부 사업으로 내건 것이다. 시골의 어린 탁구부 학생들이 미래의 국가대표가 되고 올림픽 메달리스타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모금에 나선 것이다.

고향사랑기부 플랫폼 고향사랑e음에 신설된 지정기부 창. 제도 시행 첫날인 4일 8개 지자체가 11개 사업을 대상으로 지정기부 모금을 시작했다. 사진 고향사랑e음 갈무리

지난해 광주 동구와 전남 영암군이 처음 시행했던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가 올해는 전국으로 확대된다. 지정기부란 기부자가 낸 기부금이 지자체가 내건 특정 사업에 사용될 수 있도록 지정해 기부하는 제도다.

행정안전부는 고향사랑기부 플랫폼 고향사랑e음에 지정기부 창구를 신설했다고 4일 밝혔다. 고향사랑e음을 통한 지정기부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시행됐다.

시행 첫날 지정기부에 참여한 지자체는 8곳, 지정기부 사업은 모두 11개다.

청양군은 탁구부의 훈련비용 3500만원과 대회출전비용 1500만원 등 5000만원을 올해 목표액으로 설정했다. 충남 서천군은 지난해 화재로 불타버린 서천 특화시장 재건축 비용을 모금하기로 했다. 5억원을 모금해 부족한 건축비용을 충당할 계획이다. 울산 동구는 청년노동자 공유주택 조성사업을, 경남 하동군은 유기·피학대 동물 구조·보호 지원사업을 각각 내걸고 모금에 나섰다. 하동군은 독거노인 목욕이용권 지원사업도 함께 추진한다. 이 밖에도 광주 남구는 통일 효도열차 지원사업과 시간우체국 조성사업을, 서울 은평구는 소아암 환자 의료용 가발 지원사업을 지정해 지정기부를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민간 플랫폼을 통해 처음 지정기부를 받았던 광주 동구와 전남 영암군도 올해 지정기부를 이어간다. 영암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공산후조리원 의료기기 구입’을 내걸었다. 소아용 저출력 심장충격기 등 운영장비 38종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모금 목표액은 2억2000만원인데, 지난해 이미 1억7000만원을 모금했다. 광주 동구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광주극장 시설개선 및 인문문화 프로그램’과 ‘발달장애 청소년 E.T 야구단 지원사업’ 두 가지 사업을 등록했다. 광주 동구는 목표금액도 과감하게 잡았다. 각각 10억원과 11억5000만원이 모금 목표다. 지난해 이미 사업홍보가 광범위하게 이뤄진 터라 목표액을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기동 행안부 차관은 “고향사랑 지정기부를 통해 지역사회 문제를 지자체와 기부자가 함께 해결하게 될 것”이라며 “새로 시작하는 고향사랑 지정기부에 많은 관심과 기부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여전히 지난해 지자체들이 요구했던 민간 플랫폼을 통한 모금은 허용하지 않아 갈등이 예상된다. 행안부는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시행지침’을 통해 기존 모금뿐 아니라 지정기부 모금 역시 ‘고향사랑e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이에 대해 지자체들은 기부자의 편의나 지자체의 실무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자자체장은 법이 정한 엄연한 모금주체이지만 행안부는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자신들이 만든 고향사랑e음 플랫폼 이용만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지정기부제 도입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모금 활성화를 위해서는 좀 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지자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야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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