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모색하나…서울시 신통기획 속도조절
서울시, 반대·갈등 심한 곳 후보지 제외
동의율 요건 강화하고 투기지역 배제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 속도 조절에 나선다.
시는 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 선정 기준을 주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고 5일 밝혔다. 찬성동의율이 50%를 넘는 구역에는 ‘가점’을, 반대동의율이 5~25%인 구역에는 ‘감점’을 주는 방식이다. 수용, 철거 등 공공이 밀어부치는 재개발 사업 방식을 주민 동의를 우선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그간 신통기획은 너무 낮은 동의율 요건으로 지적을 받았다. 노후 주거지들에는 재개발을 원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재개발 속도전을 위해 지나치게 진입장벽을 낮춰 놓다보니 주민 갈등이 심해졌고 심지어 신통기획을 철회하는 지역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찬성, 반대에 대한 가점과 감점 폭을 확대했다. 찬성동의율이 50~75%인 구역의 가점을 당초 10점에서 15점으로 높이고 반대동의율이 5~25%인 구역의 감점을 기존 5점에서 15점으로 강화해 주민 의사를 후보지 선정 기준에 적극 반영키로 했다.
반대 비율이 높을 경우 감점을 넘어 아예 후보지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도입된다. 반대동의율이 25%가 넘으면 제외하고 20%만 넘어도 후보지에서 제외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투기의심 지역도 후보지 선정에서 배제된다. 최근 신통기획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 사업구역에선 지분쪼개기, 갭투자 등 투기의심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투기세력 유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진행, 투기가 발생했거나 의심되는 구역은 후보지 선정에서 완전히 배제할 방침이다.
앞으로 재개발 구역에 지정되려면 법·조례상 정비구역 지정요건을 충족하고 토지등소유자 30% 이상이 구역지정을 희망하는 지역, 이 두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구역지정 요청을 할 수 있다. 만일 투기행위가 적발되면 이미 후보지로 추천된 곳이라도 향후 2년간 재추천이 금지되는 조항도 신설된다.
◆초반 흥행과 달리 곳곳서 마찰 = 신통기획은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후보지 선정 기준을 강화하면 사업 추진 속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시는 이번 대책의 배경을 “주민 갈등을 최소화하고 추진 가능성이 있는 곳에 집중해 사업 속도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될 곳’에 집중해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그간 서울시 정비사업 정책은 장애물 제거 등 속도 올리기에 방점이 찍혔고 정부의 재건축 활성화 대책도 안전진단 면제 등 규제완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면서 “속도가 늦춰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후보지 기준을 바꾼 것은 규제 완화로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정비사업을 둘러싼 환경이 심각하다는 의미”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선 시의 이번 조치를 두고 ‘정비사업 출구전략에 시동을 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공이 주도해온 정비사업 추진 책임을 '동의율'이라는 명분으로 주민에게 넘기고 장차 일어날 수 있는 성과미달 사태에 대비하려는 포석이 담겼다는 것이다.
주택·건축 분야에서 근무했던 전직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의 주택공급은 재개발 재건축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구조가 깨지면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서울 집값 등 부동산 문제가 다시 터질 수 있다"며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현실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속도조절 수준이 아닌 근본적 대책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